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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Baeminteacher

학생 인권과 민주시민 교육 강화의 병리





Near the Hangang railroad bridge, May 2021





서론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면 가끔씩 안타까운, 혹은 씁쓸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하나는 학교에서 복도를 청소하시는 분들(주로 여사님들)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이다. 그 분들께 인사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똑 같은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에겐 살갑게 인사하기도 한다.


역사교사로서 설명하자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예의는 심각하게 실종되어 있는 상황이다. 물론 조선시대와 같은 유교 윤리로서의 예를 강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교 윤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강조하다보니 자연히 모든 사람을 대등하게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의의 관념 자체가 유교적인 수직적 인간관과 도매급으로 함께 폐기되어서도 곤란하다. 가령 인사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기본 시각의 표현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유아적인 행위일 뿐이다.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구성원들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 없이, 즉 자신이 좋아하든 않든, 자신과 친하든 않든, 상대가 지위가 높든 낮든,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관계 없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예의를 갖추어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여기에는 '나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이 상호 조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구성원들 서로 간의 인격 존중을 생활화하고 상처를 치유해 나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1. 학교 문제는 한국 사회 문제의 축소판


인간은 매우 주관적인 동물이라서 자신이 대하는 상대가 자신이 볼 때 가치 (value)가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에 대해 머리 속에서 판단해서 그에 맞춰 행동하는 본능에 가까운 습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습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살아간다면 비문명화된 야만적 인간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학교는 그러한 나이 어린 비문명화되고 미성숙한 인격체가 사회적 상호작용을 익혀나가면서 보다 성숙한 인격체, 즉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격체로 발달해나가는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아마도 이것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존재이유이자 본질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학교는 단순한 놀이터도 아니며 사교육 시장과도 그 작동 방식이 다르다. 물론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 (Erving Goffman)이 말한 '총체적 기관(total institution)', 즉 교도소나 정신병원과 같은 단절된 폐쇄적 공동체는 아니지만, 자유로운 시장(free markets)과 같은 일반적 사회적 공간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와 같은, 학원과 학교 간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흔히 학생과 교사에 의해 간과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학교의 교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과목 지식을 학습하는 것보다도, 인간에 대한 예의, 더 본질적으로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다른 인간들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나가게 될 것인지의 사고를 형성하는 것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생인권 신장과 관련된 많은 논의에는 사실 이러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인 측면이 종종 간과된다. 철학은 어려우니까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저 구체적인 현실의 사안들에 파뭍여 서로에 대한 편견 속에서 갈등하고 반목하고 오해하고 지낸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교직원들이 학교라는 공간 안에 왜 존재하고, 이 공간에서 추구해야할 가장 핵심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역사학적 논의를 진지하게 해나가는 사회적 모습을 역사교사로서 나는 한번도 한국 사회에서 본 적이 없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학생 인권과 교권이 대립하는 현실을 해소하기 위해 보다 많은 사회적, 교육적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한국 사회 문제의 축소판과 같다.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병리적인 모습이 학교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뿐이다.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은 어쩌면 철학이 없는 사회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철학이 없으니 사회 구성원 간에 나타나는 문제의 본질적 원인을 깊이 있게 고민하기 보다는, 편견과 오해에 둘러 싸여 서로 간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고 받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타인의 가치를 피상적인 모습으로 평가하고 타인의 인격을 손쉽게 재판해버리는 비문명화된 야만성의 사회이자, 사회 구성원들 내면에 존재론적 내상(內傷)이 일상화된 사회이기도 하다. 그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모두들 '자신의 느낌과 감정', '우리의 느낌과 감정' 만을 내세운다. 특히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후자가 과장되고 증폭되는 경우 사고의 객관성은 흔히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상황에서는 나의 감정, 우리의 감정은 상대의 감정, 상대 집단의 감정보다 절대 더 중요하지 않고 더 중요해서도 안된다. 이 쉽지 않은 인간에 대한 기본 태도는 모든 개인의 인격성이 자유롭게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서구 개인주의 철학의 핵심 관념이기도 하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도 '우리'를 내세우는 친밀함 그리고 공동체적 협동을 앞세우기 이전에 먼저 개인 간의 상호 존중의 기본 태도가 강조되어지고 학습되어져야 한다. 애당초 타인의 개인성에 대한 전적인 존중이 없이 협동과 소통이 의미를 가지기란 힘들다. 이토록 중요한 인간 상호간의 인격적 존중이라는 대원칙은 왜 이토록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한국의 학교 현실에서 지켜지기 힘든 것일까?



2. 모호한 민주시민 교육의 문제점


한국사회는 조선시대 내내 유교 성리학적 원칙이 강조되는 가운데 상하 관계 중심의 인간 관계 속에서 지내왔다. 남녀와 노소의 분별은 그 위계 서열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또한 지난 세기까지도 권위주의적 성격은 한국 사회를 강하게 규정하는 하나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유교사회의 지배층이 향유했던 것과 같은 집단주의적 전통에 기반을 둔 강제적 제도는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많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러한 사고 양식 역시 많이 개선되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수직적 권위에 기반한 제도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에는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 자유주의가 확산되고 국제 무역이 심화되면서 유교적 전통과 같은 집단주의적, 페쇄적인 권위가 더 이상 지탱되기 힘들었던 것이 주요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러한 보수주의적 권위에 기반한 수직적 인간관이 아닌, 물질주의적 이기심에 기반한 또 다른 수직적 인간관, 소위 갑을 관계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사회 현상이 팽배해져 가는 모습이다. 종교적 구심점도 없고, 전통적 가치관도 붕괴한 상황에서 영미식 개인주의적 철학도 경멸시 되는 상황이다 보니, 사회 구성원 사이에 배려와 겸손을 가져올 수 있는 철학적 바탕이 없다.


오직 남은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왜곡된 이해에서 초래된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모습과 사회주의적 시각의 확산으로 인해 초래된 갈등론적 사회 인식이다. 즉 나의 이해관계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양보할 수 없고, 타인과의 갈등을 적절히 해소해 나가면서 (주로 강자에게는 약하게 약자에게는 강하게 나가는 전략을 활용) 이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이 현명한 행위 전략인양 한국인의 사고에 보편적으로 자리잡아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학생들은 무엇이 효과적인 행동 양식인지 사회적으로 매우 빠르게 습득한다. 이렇게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관계 (그것이 어떤 목적을 상정하든)를 추구하기 위해 어떻게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익혀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영향, 특히 한 사회의 교육 방향은 지대한 역할을 한다.


요즘 학교의 어떤 교사도 예전 유교적 마인드와 같은 집단주의적 전통을 다시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 꼰대 스타일로 학생을 지도하려는 그런 강심장을 가진 교사는 이제는 거의 없다. 오히려 많은 교사들은 학생 눈 높이에 맞추어 친근하게 다가가는 교사 상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사 개인들의 개별적인 노력보다 더 중요하게, 교육 철학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는 거대한 하나의 교육 방향은 소위 민주 시민 교육 그리고 학생 인권 교육이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내면에 가지는 시민의 양성. 명목은 그렇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민주주의개념을 분명히 정의내릴 수 없으며 민주주의적 가치라는 것에 대해 합의된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사회 교과에서 가르쳐지는 민주시민 자질의 많은 요소들은 듣기 좋게 들리는 그럴 듯한 여러가지 태도 요소들을 보기 좋게 버무려 놓은 비빔밥 한 그릇에 가깝다. 가령 민주시민의 자질로 일컬어지는 합리성과 준법정신, 관용과 양보, 자율과 주체성 등의 여러 덕목들은 그저 근대 역사 속에 등장했던 수많은 사회적, 도덕적 명분의 집합체에 가깝다. 특히 최근 정부에서 이 비빔밥의 핵심 지향점은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고 협동하고 공감하는 인간형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


인간은 목적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그러한 소통과 공감, 협동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학생들은 어떻게 주어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보다 많은 수의 친구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터득해 나간다. 실제로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이해관계가 관철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소수의 압제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왕정을 극복하고 근대사의 또 다른 장을 열었다는 역사적 의미는 있으나, 언제든지 자유주의적 요소가 결여될 때 전체주의로 타락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절대적인 지상 과제로 설정되어 사회, 문화, 경제, 교육 전 부분에 지배적인 원리로 기능해왔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한 사람의 교사를 앞에 두고 있는 다수이다. 즉 민주주의 원리로 보자면 이들이 강자이며 교사가 약자이다. 물론 교사의 경우는 다수의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여러 권한과 권위가 주어진다. 또한 일부 비윤리적 교사의 경우 교묘한 인격재판의 방식으로 혹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학생의 행동을 심리적으로 조종하거나 위협하는 언행을 할 수도 있다. 교사의 전문직업적 윤리의식은 지금보다도 더 제고되어야 한다. 일부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교사로 인해 전체 교사의 교육 행위를 위한 권한이 위축되는 상황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교실에서 다수의 학생 집단을 마주하는 교사는 외롭게 혼자서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사에 대한 교육적 책무보다 학교 내 민주주의 원리가 더 강조된다면 교사도 어쩔 수 없이 다수 학생의 이해관계에 밀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교사가 다수 학생들 사이에 공유된 (특정한 이유로 인한) 적대적인 감정에 대한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학생과 교사 간의 갈등이 극적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도 간혹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비극적인 교권 침해 사례들은 대부분 학생 교사 관계에서 존재하는 편견과 오해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


교사의 교육 행위를 위한 권한은 궁극적으로는 학생의 인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교사와 학생 간 관계가 편견과 오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철학적 사상이 요구된다. 가령 인간 사이의 상호 존중과 배려라는 서구 근대의 개인주의적 철학에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역사성이 부재한, 철학적으로 공허한 교육 관념인 '민주시민 교육'은 과연 그러한 학교 내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존중과 배려를 근본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념인가에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 관념 자체가 다수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실현시켜주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온 고도의 정치적 함의가 담긴 개념이라 미성숙한 학생들이 민주시민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타인의 인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익히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현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 존중보다는 집단적인 협력과 소통을 더 우선시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민주시민 교육과 교실 민주화의 방향 속에서 점차 협력과 소통을 할 대상을 고르기 위해 타인의 가치를 매기고 자신을 지지해줄 동맹을 찾는 것에 기민한 인간으로 발전해 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보편적인 시민의 권리, 혹은 인간의 권리와 구별되는 학생의 인권이 별도로 강조되는 이유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로서 나는 교실 속에서 점차 다수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학생들의 전략적 움직임에 교육 행위를 위한 권한이 이상하게 대립되는 불편한 현실을 점점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학생 인권의 강조 그리고 민주시민 교육의 강화는 이상주의적이고 정치이데올로기적인 철학에 바탕을 둔 정책으로서, 미성숙한 존재인 학생의 인격 성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학교와 교사를 떠밀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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