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글을 쓴다가 느끼는 점들
- Baeminteacher

-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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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11월 6일

영어로 학술 논문을 쓰다보면 내가 집단주의적 한국사회의 문화에 젖어서 습관적으로 a 보다 the를 더 많이 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런 표현, 즉 find myself doing something, 도 영어식 표현이긴 하다).
The는 맥락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상황, 즉 필자와 독자가 다 같이 알고 있는 대상이나 현상을 이야기할 때 쓰게 되는데, 이렇듯 영어를 쓸 때 a보다 the의 사용을 습관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대상 중심적 사고를 하는 서양인들의 사고와는 다른) 맥락 중심적 사고를 하는 한국인의 사고 경향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영미인들은 내가 the를 쓰고 싶은 혹은 써야 할 것 같은 문장에 a 나 복수형 명사로 그냥 쓰는 경우가 많은 데, 이는 내가 생각할 때 개인주의적인 문화적 정서에서 나오는, 독자와 엮어서 대상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 대상 그 자체에 대해 사고하고 발언하는 그들의 문화와 관련이 깊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나는 인터넷 매체에 이런 내 생각을 칼럼으로 기고한 적도 있었다. 각각 맥락과 대상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에 대해.* 물론 전문 언어학자가 아닌 일개 역사 연구자인 내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맥락 중심의 언어인 한국어는 (일본어도 마찬가지일 것같다) 형용사와 동사에 붙는 어미가 매우 다양하고 정교하게 발달해 있다. 어떤 맥락에서 (즉 누구한테 혹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상황에서) 내가 얘기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언어로 된 글은 emotional 하고 심미적인 경향이 강해서 인문학, 특히 문학과 (고전적 의미의) 역사, (철학 중에서도) 윤리학 등에 적합하다. 이를 보여주듯, (일반적으로 훈고학이든 성리학이든 유교의 관념 자체가 정치적 성격이 강하고 역사를 중시하긴 하지만) 한국사는 특히 역사와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흘러온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에서 먹고 살만 해지면 철학과 예술이 발전하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조선의 지배계급에서 볼 수 있는 모습, 즉 시와 서화를 필수적인 양반의 덕목으로 생각했던 인문학적 특성도 그와 관계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한국어나 일본어에는 한자가 명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 한자를 활용하여 맥락 중심의 언어로서의 약점이 잘 보완되어 왔다. 특히 한자는 문장을 간결하게 하고 의미를 심오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반면 대상 중심의 언어인 영어는 명사에 붙이는 관사, 관계 대명사 등이 매우 발달해있는데, 이는 한국어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문법적 원소들이다.
내가 발언하고 있는 대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가리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런 언어로 된 글은 clear and brief 한 경향이 강하므로 자연 과학과 사회과학적 논의에 적합하다. 서양사에서 16세기 신항로 개척으로 자본이 유입되고 (쉽게 말해서 유럽인들이 잘 살게 되면서) 바로 17세기에 과학 혁명 (scientific revolution)의 시대가 시작되었던 모습도 이로서 이해 가능하다. 즉 먹고 살만해지면서 철학과 예술이 발전한 것은 서양도 매한가지였지만, 조선에서와 달리 철학 중에서도 인식론이 발전했고, 미술도 관념적인 동양의 문인화와 달리 서양에서는 시각적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재현이 발전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어를 했던 나는 그 때엔 왜 명사에 붙이는 관사를 영어의 the처럼 하나도 모자라서 남성(der), 여성(die), 중성(das)에 따라 세가지 관사를 만들어 쓰는지, 독일인들의 사고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의학사를 공부하면서, 19세기 scientific medicine의 발전을 주도했던 의사와 연구자들이 왜 Berlin University를 필두로 한 독일인들이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대상에 대한 정확한 구분, 정밀한 분석에는 독일어가 영어보다, 즉 독일인의 사고가 영미인의 사고보다 더 뛰어났던 것이다.
즉 영어와 한국어, 두 언어의 차이는 영미인과 한국인의 사고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리고 영어로 글을 쓰면서 보다 더 객관적으로 "한국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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