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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Baeminteacher

펜앤드마이크 기고문 관련




in Goyang-si, Gyeongkido, 2019



지난주에 펜앤드마이크에 기고한 기사글 '부동산, 대한민국의 교사 그리고 수시'(2019.11.08)와 관련하여 그 기사 관련 두 가지 비판의 쟁점 (좌파와 우파로 교사를 편가른다는 비판/ 한국의 교사를 비하한다는 비판)에 대해 좀더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를 느꼈다.




1. 좌파와 우파,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하여



내가 기고한 글에서 나는 한국의 교사들의 상당수는 자신이 사회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의 주장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입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교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시제도는 분명 학력시장에서 대학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대학은 입시를 대학 자율로 맡기기를 원하며, 수시는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선택지이다.


학교에서는 대학입시를 진학지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런데 그 진학에 있어서 어디까지 교사가 개입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은 애매모호하게 남는다. 그보다 더 문제는, 학종 비중이 높은 현재 수시 체제에서 교사의 개입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의 원리로 사회를 이해하는 우파의 시각으로 볼 때 교사가 입시에 가급적 개입을 자제할 수 있는 국가 시험 그리고 객관적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있는 내신 성적 위주로 입시가 가야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반면 가진자에 의한 착취로 부터 못가진자를 보호해야한다는 좌파의 시각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는 교사가 적극적으로 학생 평가에 개입할 수 있는 학종 비중이 높은 현재의 수시제도를 긍정적으로 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근래 30여년간 지속적으로 수시제도가 비중이 커지고 학종의 비중이 높아지게 된 추세는 우리 사회의 좌파적 교육 시각의 비중이 높아진 것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의 많은 교사들은 내가 볼 때 자신의 인식이 사회주의적 시각에 영향을 받아왔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본다.


좌파와 우파의 정치경제적 시각에 관해 옳고 그름을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좌파와 우파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반영하는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대체적으로 볼 때 사회주의적 시각은 서구권 사회에서 20세기 내내 역사학과 사회학을 비롯한 많은 학문 분야의 주류였다.


기고문에서의 나의 의견은 그것이 전적으로 옳다 그르다 논하기 힘든 논쟁의 사안이므로,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교사 역시도 진학지도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이 아닌 이상, 나의 글처럼 다른 목소리가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 더 나은 교육을 위하여 교사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대중과 나눌 수 있다.



의사들은 신문이나 대중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의료 견해를 밝히고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한다. 물론 자신의 병의원 홍보에 그런 전문적인 이미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어떤 치료 술식이나 장단점을 가진다. 그리고 그 장단점을 논하는데 있어서 쟁점의 많은 부분은 환자에게 그 술식이 더 혜택이 가는지, 위해가 가는지 여부이다. 가령 A 치료방식이 B 치료방식에 비해 가지는 장점 단점을 논하는데 있어서 논쟁점은 환자가, 즉 일반인이 그 치료를 받는데 있어서 받는 혜택, 위해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논쟁 과정에서 다른 치료방식을 주장하는 의사의 의견이 상대편 의사의 입지를 좁히는 발언을 되는 경우도 흔하다.


가령 내가 치과대학을 다니던 시절, 즉 임플란트 도입 초기에는 많은 치과의사들의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임플란트 시술에 큰 장점은 환자의 자연치아 삭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임플란트 도입을 지지하는 쪽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기존의 치과의사들은 환자의 자연치아를 많이 삭제하는 술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기존의 치과의사들은 환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의료인의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논쟁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는 환자에게, 일반인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학입시 수시제도 정책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이다. 그런데 현행 수시제도 하에서 교사가 그리고 학교가 어떠한 교육적 접근을 하는 것이 보다 학생에게 학부모에게 혜택이 가는지 혹은 손해가 가는지는 논쟁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로 다른 시각을 논쟁하는데 있어서 쟁점은 교사가 느끼는 감정이 아닌 학생, 학부모, 일반인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왜냐하면 교사가 기본적으로 학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교사가 논하는 모든 교육논쟁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입시를 바라보는 나의 기본 시각은 '교사가 학생을 더 인기 있는 명품대학에 보내려고 노력하는 만큼 수시는 공정성을 잃게 된다'라는 것이다. 다소 radical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그렇게 보는 중요한 이유는 현재 한국의 고등학생과 대학교의 관계는 이미 학력시장의 양상을 가지는 단계에 와있다고 나는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블로그 글들을 참조*).


그리고 학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현 수시 체제 속에서 자연히 나올 수 있는 교사나 학교의 행동(내가 볼 때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교사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글을 언론사에 기고했다. 그런데 나의 이러한 주장은 현재 고교 교사들이 학생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 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고한 내 글에서도 한국의 교사들은 학생을 마치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한 행동이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는 학생에게 학부모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이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했던 것이다.


의사나 교사나 모두 선의(good will)를 바탕으로 환자와 학생을 다룬다라고 하는 기본 명제를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한 전제가 없다면 환자의 배를 가르는 의료술식이 정당화될 수 없고, 학생들을 매일 학교로 불러 모아 수업을 듣게 하고 평가하는 교육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일방적으로 환자들 뜻대로 수술을 해주고, 학생들 뜻대로 학교 규정을 만들어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환자들은, 학생들은 무엇이 더 나은 서비스인지를 판단할 지식과 시야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Professionalism (전문직업성)의 핵심은 바로 그러한 선의를 바탕으로 무엇이 client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고민하고 논쟁하는 데 있다. 수많은 의료 저널, 컨퍼런스들은 바로 그러한 논쟁의 산물이자 영역인 것이다. 나의 블로그를 통해서 내가 주장해왔던 것은 교사가 전문직업성을 보다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고**, 입시제도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도 그러한 나의 교직관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교직관 자체도 논쟁의 영역에 있다. 교직관이든, 입시든, 교사와 학교의 역할이든, 논쟁이 살아있는, 다양한 의견이 표현될 수 있는 사회가 보다 열린 사회일 것이다.



간략히 나의 시각을 정리하자면, 학생이 구매자이고 대학교가 판매자인 학력시장에서 교사가 그 경쟁의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시의 공정성이 담보되기 힘들게 된다. 즉 수시가 수시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교사가 입시에서 객관적인 평가자의 입장에 보다 신경써야 한다. 나는 지금의 문제가, 제도는 영미식 제도를 도입했는데 교사의 진학지도에 대한 접근법이 옛날과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괴리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제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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