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스케치
- Baeminteacher

- 1월 17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월 18일
MBC 강변 가요제라는 가요 경연 대회가 매년 열리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함께 했던 가요제이기도 했다.
고 1 때인 1988년 9회 대회에선 이상은의 '담다디'가 대상을 탔었는데, 금상을 받은 이상우의 '슬픈 그림 같은 사랑'도 좋아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도 그 날 대회를 tv로 봤었는데, 이상은의 파격적인 노래 선율과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에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가는 듯한 신선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 가요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2년 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0년에 열렸던 11회 대회에서 만나게 된다.
그 해 대상을 받은 곡은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권성연의 '한여름 받의 꿈'이라는 곡이다. 내게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보다도 이 노래가 좋았다.
하지만 이 대상 곡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아니다.
그 해에 장려상을 받았던 민형신의 '세상 스케치'라는 노래가 바로 내가 MBC 강변 가요제 노래들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솔직히 노래를 불렀던 가수의 노래 실력과 창법은 좀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난 그 멜로디와 가사가 좋았다.
유재하의 노래 가사들처럼, 그 시절 가요들의 가사는 대개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는데, '세상 스케치'의 가사는 특히 그랬다.
그 노래를 듣다 보면, 그리고 그 가사를 읽다 보면, 마치 한 폭의 풍경이 머리 속에 그려지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그 풍경 속에서 거닐고 있기도 했다.
억지로 그리려고 하지 않아도 노래 가사가 내 머리 속에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주는 느낌이었고, 억지로 느끼려고 하지 않아도 행복감이 따뜻하게 가슴을 채웠다.
작년에 주진우라는 기자가 내가 일하는 학교에 찾아와서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인터뷰 중 그 기자가 나를 마치 비정하고 매정한 친일 반민족주의자로 몰아가려고 말을 하길래, 그 때 내가 했던 말이 '기분이 좋고 싶으면 음악을 들으세요' 였다.
그 말의 의미는 역사를 논하면서, 정치를 논하면서 자기 기분 좋으려고 상상의 논지를 만들어내거나 진실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의미였다. 풀어서 의미를 설명하자면,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고 싶은게 목적이라면) 기분이 좋고 싶으면 (역사나 정치로 논쟁하기보다 차라리) 음악을 들으세요'이다.
역사책을 읽거나 역사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지 않고 이 둘이 뒤엉킨 상태로, 즉 역사적 사실을 지금의 감정을 대입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를 찾아왔던 그 기자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아무튼, 고교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 곡은 재수하던 시절 나의 외로움과도 함께 해주었고, 대학교에 입학하던 당시 나의 설레임과도,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가졌던 세상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감정과도 함께 했었다.
어쩌면 이 노래를 좋아했던 이유는 내 인생에서 가장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함께 했던 노래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2013년에 내가 냈던 첫 책의 '에필로그' 마지막 부분에 묘사했던 그 시절이기도 했다.
"이 책의 어디에선가 한번 인용하기도 한 책 <다니의 일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시작한 성당 주일학교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샀던 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 영혼이 (영혼 말고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 지금은 지나온 시간이지만 손에 들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눈가에 영롱한 눈물이 맺히게 하는 그런 책이다."
... 물론, 지금도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땐 나는 음악을 듣는다.
거리마다 환한 미소
저 뛰노는 아이들처럼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워.
밝은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고
푸른 물결 넘실 춤추는 바다
울고 웃으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저 먼 하늘에 들려오는
평화의 노래 소리
세상은 변함 없이
아름다워.

이과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책자. 치의예과 2학년 때 (1993년), 1년 아래 후배들을 맞이하러 나도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었다.

이 책자에는 이과대학에 소속된 각 학과 별로 소개 란이 들어가 있었다. 내 입학 동기였던 92학번 친구들 (당시 2학년)의 이름들이 보인다.

이 책자의 맨 뒷 부분에 있던 후원 업체 광고란과, 그 옆 빈 공간에서 나를 기다려준, 환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던 '금다래와 신머루'.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당시 성당에서 교사회를 위해 구독해준 '가톨릭 디다케' 잡지.

'가톨릭 디다케'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코너는 두말 할 것 없이 '디다코의 교사 일기'. 아마도 그 시절 전국의 모든 천주교회 주일학교 교사들은 매달 나처럼 이번 달엔 디다코가 무슨 사고를 칠까 궁금해하며 잡지를 기다렸을 것이다.

주인공인 디다코와 만화속 교사회의 교사 후배인 엘리사벳 사이의 이어질 듯 말듯한 붉은 실이 (나에겐) 이 만화의 키 포인트였다.

'디다코의 교사 일기' 전체 편들 중에서 내가 위의 <우리들의 크리마스> 편을 참 좋아했던 것도 바로 디다코와 엘리사벳 사이의 애틋한 감정선을 작가가 성탄절을 맞아 선심쓴 건지 (다른 편들에선 주로 주일학교 행사와 신앙에 초점을 맞추어 스토리가 전개되었는데) 다소 작정하고 비중 있게 묘사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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