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꽃피는 나무
- Baeminteacher

- 5월 10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일 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게 3여년간 방송된 tv 드라마가 있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는 드라마였는데, 1987년 5월부터 1990년 7월까지 방송되었으니 내가 중3때부터 고3때까지의 시기였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당연히 그 드라마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의대생들의 대학생활 모습 그리고 그 등장인물들의 러브 라인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로 보게 된 몇몇 에피소드 속의 그 드라마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한국 사회의 가정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왔나하는 부분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그 드라마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송재호와 김창숙 배우가 분한 아버지 어머니 역이었다.
딸 둘 아들 하나를 거느린 다섯 식구로 이루어진 평범한 가정의 생활 모습이 당시 평범한 2층집 단독 주택을 주배경으로 펼쳐졌다.
딱히 넓지도 않은 앞마당은 빨래를 걸 만한 작은 공간이었고, 거실은 낮은 탁자 하나가 카페트 위에 놓여져 있는 평범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 속 감정의 공간으로서 가장 정서적으로 구심력 있고 안정된 공간이 바로 그 주택의 거실과 앞마당이었다.
그 식구와 함께 거주하는, 또 그 식구와 이런 저런 인연으로 연결된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바로 그 앞마당과 거실의 공간을 통해 드라마 속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드라마는 중심 역할을 하는 가정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다른 가정들도 보여준다.
의대생 신분으로 결혼을 해서 시어머니와 함게 세 식구를 이루고 사는 신혼 가정, 부유한 병원장과 의대생인 하나뿐인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어머니가 나오는 또 다른 세 식구 가정, 의대교수와 미술 대학 시간강사를 하는 부부가 어린 쌍둥이를 키우는 네 식구 가정 등...
이들 다양한 가정들 속에서 그 드라마의 중심 역할을 하는 가정은 조그만 공장을 가진 사업체의 사장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국문과에 진학한 대학생 아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둘째 딸, 고등학생인 셋째 딸로 이루어져 있다.
드라마의 배경 시대가 학력고사 시대인 만큼 선지원 후시험의 구조가 만드는 수많은 재수생, 삼수생 .. 의 입시제도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온다.
입시 제도 자체는 지금보다 더 치열하고 경쟁적이었지만, 그런 입시가 당시 한국사회에서 지금과 같은 파괴적이고 기괴한 모습으로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진 않는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당시 학교와 삶의 모습도 그랬다. 당시엔 그런 경쟁 구도를 끌어 안아주는 '건전한 가정'이라는 지지대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대학교를 가든지 안가든지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신뢰가 희미하게나마 존재했다.
그러나, 단란한 가정.. 이라는 개념은 지금의 핵가족화된 한국 사회에 다분히 이상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이제는 더이상 평범한 개념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평범한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사회도 평범한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A man cares for a woman.
A worker works for his company.
이런 평범한 개념이 1980년대와 달리 202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는 이제 서로 믿지 못한다.
사업주와 사원은 이제 서로를 불신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계약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남녀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쉽게 계약을 맺기 어렵다.
혼인율과 출산율은 바닥으로 내려 앉았고
실업율은 천정을 뚫고 올라가 있다.
역사학적으로 한국 사회를 고찰해보면,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한국 사회가 그러한 turn toward distrust 로 본격적으로 바뀌게 된 시절이..
물론 당시의 한국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기존의 관성대로 사회의 많은 것들은 흘러가므로 시대 조류가 바뀌고 나서 적어도 한두 세대가 지나야 그런 바뀐 조류의 영향이 가시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지금의 한국인들은 타인에 대한 신뢰와 사회에 대한 희망이 상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다.
1980년대에 '사랑이 꽃피는 나무' 속의 단란한 가정의 모습은
이제 '부부의 세계'와 같은 기괴한 디스토피아 같은 가정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이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즐길 수 있는 tv 시청의 문화 자체도 사라져 버렸다.
'사자에상'과 같은 소소한 가정의 일상을 다루는 가족 애니메이션이 50년 넘게 tv 프로그램으로 장수하는 일본 사회와 달리, 한국인들에겐 더이상 신뢰할 만한 tv 공영방송 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란한 가정도 없고 그런 단란한 가정을 반영하는 건전한 매체조차 이제는 존재하지 않으니, 모두들 파편화되어 유튜브, 넷플릭스만 볼 뿐이다.
자본주의를 혐오하는 자본주의 사회일 수록 자본주의 제도의 어둡고 병리적인 부분만 잘 보고 배우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번 학기에 내 과목에서 한 학생이 자신의 품은 capitalism에 대한 반감을 서스럼 없이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에게 '너가 말하는 자본주의는 그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고 싶었다.
시장과 자본주의..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평범한 생활의 모든 유익(utility)에 대해 너무도 평범하게 받아들인다.
언제나 가서 돈만 주면 빵을 살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를 가지기 보다는 공격하고 비판하는 것에 열을 낸다.
만약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빵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
즉 밭에 가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일을 해야 한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직업의 다양성도 사라진다.
오직 입에 들어갈 것과 생필품을 만들기 위한 노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가 인류 역사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 역사를 모른채 전원과 자연에 낭만을 품고 살아간다.
무엇보다 그 낭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회주의이다.
사람들은 시장이 없어진 빈 자리가 결코 진공으로 남는 것이 아닌 (정치적 사회적) 권력이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는 사실에 둔감하다.
돈이 많은 자에 대한 시기심에 눈이 멀어, 더 무서운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한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 (the state)는 바로 그러한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대표하며, 법을 무기로 언제든 국가는 국민 개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시장과 달리 국가는 선택의 여지를 개인에게 주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전세계가 1960, 1970년대 New Leftism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의 광풍 속에 있을 때 반공의 사회적 울타리 속에서 기업이 성장하고 건전한 가정이 성장했다.
아마도 일본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반공산주의적 사회 기운이 강했던 일본으로부터, 특히 그 일본 엘리트 정신으로 무장했던 군사정변을 일으켰던 세력의 정신 세계가 한국사회에선 1980년대까지 계속 정치 권력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와 달리 1990년대 김영삼 정부는 이전 시대와의 단절에 몰두했다.
서울 광화문의 구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의 철거는, 그리고 이전 대통령들의 재판과 투옥은 그 가장 상징적인 예였다.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국한문 혼용이던 대중매체의 글자는 순한글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기업인 '대우'를 포함해, 이전 시대 서울과 지방의 많은 기업들이 외환위기 속에 사라졌고, 그 이후에도 다시 그러한 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의 청년들은 중소기업에 취직할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기업의 생태계 자체가 너무나 척박하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에서 사회복지, 보건, 교육 등에 편성되는 국가 예산은 점점 늘어나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더이상 서로를 신뢰하지 않고 미래를 더이상 희망적으로 그리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왜 그럴까?
왜 돈만 퍼부으면 사회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잘못된 생각에 경도되어 있었을까? 아니 지금도 왜 그러한 잘못된 경향에 여전히 사회가 젖어있을까?
사실 돈을 퍼붓는다고 건전한 기업이 성장하거나 건강한 가정이 성장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A man cares for a woman, and a worker works for his company 라는 기본 명제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페미니스트들과 사회주의자들 때문에 사실은 이같은 말도 쉽게 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은 행복할 권리를 외치며, 소확행이니 힐링이니 하면서 행복해지려고 기를 쓰며 살아간다. 언제부터 이런 근시안적이고 즉각적인 시각에 파뭍여, 건전한 사회를 위한 보다 중요한 이야기는 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일까.
자유를 권리와 동일시하는 병리적인 사회민주주의 사조 속에서 개인주의 철학의 핵심인 자유와 책임의 연결 고리가 실종된 모습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기만 할 뿐이다. 정부가 자신들에게 뭔가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데 지원이 모자라다고 불평을 터뜨린다. 법이 압제적이고 불평등하다며 수많은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가들은 크고 작은 법개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하지만 제 아무리 재분배적 성격의 법과 정책을 도입한다 한들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돈에서 나오지 않는다. 돈은 가치(value)를 매개하는 수단일 뿐이다.
애당초 오스트리아 경제학 뿐 아니라 많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철학의 핵심은 욕망에 대한 제어과 가치에 대한 성찰에 있다.
시장은 인간의 욕망을 표출하는 공간이라기 보다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공간에 가깝다.
오히려 시장에서 인간은 자신의 어떤 욕망을 포기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보다 중요한 욕망과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를 깨닫게 된다.
글을 적다보니 삼천포로 빠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시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돌아가서, 그 드라마와 비교해 지금 시대의 한국 사회는 무엇을 상실했는가..
1980년대 반공의 울타리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근엄하고 자상한, 성실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그려지던 사회 속에서는 많은 사회 제도들이 그 흠결에도 불구하고 잘 유지되었다. 사회 제도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신뢰와 희망이 보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간의 신뢰도 없고, 개인이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는 .. 1950년대로 2020년대 한국사회는 어느샌가 되돌아와버렸다. 한가지 더 안좋은 것은 돌아갈 가정도 이제 없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한국의 성장과 발전은 그 물질 보다는 정신에서 그 원동력을 찾아야 하고 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학자들은 소위 '군사 독재' 시절을 흑백 논리로 그리거나, 혹은 공과 실을 나누어 (경제는 성장했으나 정치는 후퇴했다는 식으로) 환원론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시절 한국 사회는 분명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하루하루 더욱 건강해지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1950년대의 (전쟁으로) 처참하게 붕괴된 사회에서 신뢰와 희망을 되찾은 것 자체가 바로 그 시절의 가장 큰 의미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 한 세대가 훨씬 넘도록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토록 소중하게 쌓은 신뢰와 희망을 상실했다.
사회주의적 반시장적 사회 사조 속에서 시장의 논리를 대체하겠다고 제정된 수많은 법들과 돈 풀기에 불과한 정부 정책들의 단물에 흠뻑 도취된 사이 우리는 extremely arrogant and spoiled 개인이 되어 버렸다.
어느샌가 지금의 한국 사회는 1959년 '오발탄'의 한국사회로 다시 되돌아와 버렸다.
1989년의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이제 한 때 그 사회가 가장 건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땀흘리던 시절의 자화상으로 박물관의 액자에나 남아 있는 과거의 기억이 되어 버렸다.
그 가장 큰 잘못은 바로 평범한 것을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던 오만함, 즉 그 평범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더 노력해서 유지해 나가려고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들의 오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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