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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역사의 중요성

  • 작성자 사진: Baeminteacher
    Baeminteacher
  • 14분 전
  • 4분 분량


금정구, 부산 (February 2026)
금정구, 부산 (February 2026)








언어와 역사의 중요성

 



싸울때는 무기가 중요하다.

상대편의 무기를 무력화시키거나 거세해버리면 이미 상대편은 전의를 상실하는 것 이전에 싸울 수 있는 조건에 더이상 서있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싸움 자체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번 트럼프 대통령이 다보스 포럼에서 2020년 부정선거가 없었더라면 (자신이 당선됐을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없었을 거라고 말했던 게 난 인상깊었다. (그로선 당연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었던) 부정선거가 아니라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건 어떤 근거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자신이 막을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가였다.

그런데 이번 이란 침공으로 트럼프가 그 말을 한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이번 미국의 이란 침공은 실상 대중국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이 2027년 혹은 2028년에 타이완을 침공할거라는 건 사실상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소문이었다. 다카이치 총리가 타이완이 위협 당할 시 일본이 도와야 한다는 일본 의회에서의 발언에 (즉 타이완과 일본의 문제에) 중국 외교부장이 일본 총리에 목을 따겠다는 험한 발언을 했던 것도 중국의 타이완 침공은 더이상 비밀도 아님을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미국의 이란 침공은 중국의 원유 공급의 왼팔인 베네수엘라에 이어 그 오른팔까지 잘라내겠다는 의도이다. 세계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이렇게 되면 아마도 이번 세기 내에 타이완을 침공할 계획은 물건너 가게될 확률이 크다.


하지만 상대편의 무기는 원유나 미사일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사상전’이라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얘기 해보자. 한국 우파 정치집단의 지리멸렬한 자화상이 이를 통해 드러난다. 한국에서 우파는 무기가 없다. 아마도 이번 세기 안에 우파가 제대로 집권해서 그 ‘우두머리’가 탄핵 안당하고 감옥 안가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간단한 사실을 우파 정치인들은 모르고 있는 것같다. 나같은 우파 개인이 볼 때 한국의 사상 지형에서 우파는 사상전의 핵심 무기인 언어와 역사를 이미 좌파에게 빼았겼다.


사실 빼앗긴지 오래되었는데 떳다방 부동산 사기 집단처럼 정치를 해온 최대 우파 정당의 정치인들만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들은 애초에 철학도 사상도 없으므로 그런 것 자체에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왜 한국의 최대 우파정당이 선거의 승부수로 내세운 당수 두명이 대통령은 되었지만 연이어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을까? 가장 근본적으로는, 사상전에서 그들의 정책을 합리화해줄 수 있는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좌파는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사상전을 준비해왔고 또 치뤄왔다. ‘전쟁입니다’라는 문구는 최근 세간에 화재가 되었지만, 이미 좌파 운동권 세력에겐 일상 용어였다.


이에 비해 주류 우파 정치인들 내부에는 전혀 이러한 마인드가 자리잡혀 있지 않았다. 우파의 핵심 사상과 철학 (철학으로서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이를 현실화할 ‘작은 국가’ 및 자유 시장의 국내 정책)을 선명하게 내세우고 이에 대한 실존적 위협세력이랄 수 있는 국내 좌파 세력과 싸우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지금이 ‘사상전’이라는, 혹은 ‘체제 전쟁 중’이라는 상황 파악을 아직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아마도 레거시 미디어를 너무나 열심히 시청하고 정독해서 그들의 언어와 역사 프레임을 이미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상에 관한 말을 하면 색깔론으로 그들로부터 비난받을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철지난 색깔론을 들고 나온다’고 공격 당하는 이유는 색깔은 없는데 있다고 하기 때문에 공격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파가 사상전에서 졌기 때문에 사상전을 시도만 해도 (레거시 언론을 다 장악한) 좌파 언론 노조에 의해 색깔론으로 몰리는 것이다.


좌파 정치인들은 오히려 입법부에서 열심히 싸워서 탄핵이든 법안이든 통과시키기만 하면 (이미 정쟁의 또 다른 시합장으로 변질해버린) 사법부가 나머지는 알아서 하리라 생각하는 것같은데, 우파 정치인들은 입법부 단계에서 타협 운운하며 점잔 피다가 최종 단계인 사법부가 자신들을 위해 입법부 거대여당의 교만을 바로잡아주기를 기대하는 환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패션너블한 이미지와 인기를 바탕으로 한 개인기로 정치를 해왔을 뿐이다. 화살이 비처럼 날아오는 전장터에서 코뿔소처럼 전진할 힘도 의지도, 무엇보다 그래야할 철학도 사상도 이들에겐 없다. 오직 타협과 ‘국민’ 운운하는 레토릭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타협과 협상은 어디까지나 언론전의 연장일 뿐이다. 가령 선명한 철학과 사상을 가진 재야 보수 우파 세력들은 레거시 미디어에 의해 ‘극우’나 ‘음모론’에 빠진 괴랄한 사회 집단으로 낙인찍혀 정치적 협상 자격도 없는 상태다. 언론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모습 안에선 우파 철학이나 사상은 선명할 수록 더욱 위험하고 부도덕한 것으로서 (주류화된 ‘정상적인’ 좌파 사상과는) 공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비춰질 뿐이다.


좌파의 핵심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즉 대한민국 역사에서 맑시즘을 그 사상적 뿌리로 하는 민족사회주의 정치 세력 (이들의 뿌리는 20세기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은 ‘우리 민족’이라는, 그리고 ‘민주화’라는 언어와 역사로 자신들의 권력의 명분을 다져왔고 그 반대편 정치세력을 반민족, 반민주 세력으로 프레임지어왔다. 엄청나게 nation과 민주주의를 신성시하는 이들은 미국 건국혁명보다는 프랑스 시민혁명에 더 정서적 애착을 가지는 모습을 보이며 한국 역사도 그런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식으로 20세기 후반이래로 언어와 역사로 구성되는 (주동식 대표 표현대로) 정치적 상징자산을 차근차근 쌓아온 좌파 세력에 대항해서, 임건순 철학자 표현대로 나이브하게 (판검사, 장차관으로 대접받다가 퇴임하고) ‘인생 이모작’ 마인드로 편안하게 정치해왔던 것이 우파 정치인들이었다.

이 인생 이모작들에게 당연히 누구를 위해서 싸우는 활동을 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우파는 그래서 애초에 정치세력이랄 것도 없고 진정한 리더조차도 없으며, 선거를 위해 필요할 땐 반기문 전유엔총장 모셔올 때 했던 것처럼 임시직 채용하듯 용병을 고용해왔다.

이들은 늘 ‘국민’의 눈높이와 국민의 뜻을 거론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국민의 요구대로 (인기만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정책을 급조하고 폐기하는 정당이라면, 이미 정당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며 스스로가 오직 선거전을 위한, 궁국적으로는 권력과 관직을 위한 철새 집단에 불과함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좌파는 그 사상적, 철학적 지향점이 명확했고, 거의 종교와도 같은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을 이 정치 시장에서 한명의 국민한테라도 더 팔겠다는 신념으로 정치 활동을 해왔다. 가령 전교조와 언론노조는 필드는 다르지만 교육과 언론을 통해 미래와 현재의 국민 한사람이라도 더 좌파 사상으로 세뇌시키겠다는 신념을 바탕에 두고 노력해왔다. 오히려 임금 투쟁과 같은 현실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집단 행위들은 사상전을 대하는 그들의 진심에 비하면 피상적인 모습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본질과 피상의 차이를 구분 못하는 우파 정치인들은 만들어진 프레임 안에서 ‘민생이 먼저’라고 영혼도 없이 외쳐왔을 뿐이다.

좌파의 강한 신념 그리고 이 신념이 연결해주는 서로 다른 필드들 간의 연대의 결과로 지금 모든 한국인들은 이들이 가진 언어와 역사로 프레임화된 지식과 정보들을 매일 매시간 아니 매순간 흡수하고 있으며 좌파의 프로파간다에 뇌가 절여질 정도로 세뇌당해 있다. 오죽하면 역사학자인 이영훈 교수가 지금과 같은 한국사 교육이라면 중단시키는게 낫다고 주장하겠는가.


기둥을 땅에 굳건히 박고 깃발을 선명하게 내걸고 그리고 외연 확장을 하는 것이지, 기둥도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깃발도 없는데 (실체도 없는) 중간이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개인기와 인기로 끌어올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 나가는 것이 더 낫다.  

철학도 사상도 없고 (뇌도 없고), 언어와 역사도 없는 (무기도 없는) 한국의 우파에 그나마 유일한 희망은 (마치 미국에서 PC 아편에서 깨어난 새로운 세대처럼) 현실을 제대로 직면하고 깨어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청년들에게 있을 것이다.


즉 세대교체만이 답일 것이다.   







금정구, 부산 (Februar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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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구, 부산 (Februar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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