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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eminteacher

Simple: as an individualist




In Dundee, UK


왜 개인주의인가 (Why does individualism matter?)



현실에선 17대 1의 싸움이 일어날 경우 영화나 소설처럼 주인공 한명이 이기는 건 고사하고 온전히 살아남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물리력의 싸움이 아닌 정치와 같은 공간에선 어떨까. 그 한명은 마녀 사냥 혹은 역적으로 가죽도 못남기고 죽어 사라질 확률이 높다.


민주주의 하에서 소수는 주로 다수의 동정 혹은 지지를 통해 원하는 바를 얻는 전략을 택하지, 다수를 상대로 비판하는 등 대결적인 행동을 택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소설가와 뉴스 기자들에겐 소시오패스나 연쇄살인자들이 대중의 이목을 끄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언제나 인간 다수를 진정으로 무지막지하게 도륙했던 건 다름 아닌 평범함 인간들의 이름없는 집합체, 군중 혹은 민중이었다. 소비에트 혁명에 이은 스탈린의 독재, 나치의 집권과 전쟁 개시, 중국의 문화혁명 등 민주주의가 정치적 대세가 되기 시작한 20세기 이래의 세계사는 이를 잘 반증한다.


민중이 착취당한 적은 없다. 민중은 세뇌 당해서 무기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힘이 없었던 적은 없다. 민중을 세뇌하는 정치 집단은 그 민중의 막강한 힘을 빌려와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왔다.


착취당한 것은 바로 민중 속의 힘 없는 개인, 개인 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착취해온 것은 어느 시대에나 정부였다. 정부 (정확히 표현하면, 정치인, 관료, 공무원 등)는 언제나 자신들이 하는 일에 자신들 스스로가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여 수행하는 집단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 모두 불필요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정부가 현실적으로 필수적인 영역을 넘어서 자신의 일의 규모와 의미를 확대시키고 그로서 조직이 거대해지는 큰 정부가 되려고 시도할 때, 정부에 의한 국민 개인에 대한 착취는 자동적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시장에선 그러한 착취가 발생할 수 없다. 시장에선 어떤 구매자도 구매를 거부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 없이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강매 당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시장에서 발생하면 우리는 그것을 사기(fraud) 혹은 강도질(robbery)이라고 부른다.


정부가 하듯, 납세자인 내가 원하지도 않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놓고 그 비용을 세금으로 가져가는 짓을, 시장은 하지 않는다. 백화점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백화점을 쇼핑하는 구매자들이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며, 그게 못마땅하면 그 백화점에서 쇼핑하지 않고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동네시장에서 쇼핑하면 된다.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과 영리회사인 백화점은 성격이 다른 것이다.


목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개인의 돈을 정부가 가져가는 예는 끝이 없다. 가령 왜 교육에서 무상 급식을 해야 하는가. 이는 선택의 문제이다. 해야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것이며, 경제적 비용 효과 측면을 따져 결정할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무상이란 있을 수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라면 그렇게 도덕적 정당성을 앞세워 판매자가 결정하고 구매자는 강제로 그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납세자의 돈은 이런 식으로 정부가 시도하는 많은 정책에 의해 낭비되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이 무상 급식 문제는 그러한 전형적인 사례이며, 그 때 이래로 이 나라에선 큰 정부를 지향하는 정책의 방향성이 노골적으로 추구되어왔다. 정부의 비효율성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도덕적 정당성 및 (시장에서처럼 자신들의 돈이 그런 사기에 직접적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국민들의 공짜 구매 착시 효과에 힘입은) 포퓰리즘에 의해 점차 상승해왔다.


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사로서 정부에 의한 힘 없는 개인에 대한 피해를 자주 목도한다. 자신들이 먹은 무상 급식에 대해 맛이 없다, 양이 적다 투정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날마다 봐야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학교 수업에 아무런 진지한 태도 없이, 아니 경멸적으로 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단지 이들을 '나쁜' 학생으로 매도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선 낙제가 없다. 이게 과연 학생들에게 좋은 것일까. 인간은 공기처럼 아무런 급부 없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공짜로, 아니 의무로 학교에 가야 하고, 열심이 수업 듣지 않아도 모두 졸업하는 이상, 고등학교 졸업장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하물며, 대학이라는 거대한 비지니스업체들이 판매하는 재화(대학졸업장)에 관심 없는 고등학생들이라면 왜 학교수업에 열의를 보이겠는가.


사실상 수업태도가 '나쁜' 그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의무교육과 낙제 없는) 정부의 공교육 제도에 의해 자신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가치해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엔, 학교 교사들에 의해 자신들의 시간과 소질이 무의미하게 소모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도덕적 정당성을 내세우는 정치인들과 정부가 만들어낸 정책에 실상으로 가장 소외된 학생들이 피해 받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수업이 재미있어서 듣는 게 아니라, 그 수업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졸업장을 위해서든, 학생부 성적을 위해서든) 수업을 듣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시장의 경쟁 속에서 가치가 높은 서비스나 재화 (명문대 졸업장과 같은)를 구매하기 위해 혹은 선택하기 위해 (또한 선택받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동물이다. 물론 경쟁은 힘들고 그래서 삶은 피곤하다. 하지만, 그러한 시장과 경쟁은 자연발생적으로 인간을 더 나은 자신 (better self)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끔 이끌어 왔다.


19 세기 이래로 사회주의계열 학자와 지성인들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들을 착취와 수탈의 관계로 이해하고자 했지만,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서 늘 열심히 살아가려는 인간 개개인을 더 열심히 착취하고 수탈해온 것은 지적 도덕적 우위를 무기로 그러한 개인과 시장 위에 군림해온 정치인과 정부였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정당성이 국민들을 감화시켜 국민들이 스스로 돈과 시간을 희생하며 그러한 도덕적 가치에 따라오리라 착각한다. 빈부 격차의 현실과 경쟁의 피곤에 지친 민중 역시 공짜 구매의 착시 효과와 달콤한 재분배(redistribution)의 약속을 해오는 사회주의 정책들에 환호를 보내며 자신들 역시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그러한 착각은 그들 정치인들을 실망시키는 '나쁜' 개인 개인들을 강제로 착취 혹은 제거하는 가운데 유지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오래갈리 만무하다.


세계사에서 19, 20세기에 시도된 그러한 집단주의적 인간개조 혹은 사회통제들(소위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이름 하에 자행된)은 모두 초반의 광적인 민중 혁명의 기운이 몇십년이 못가서 가라앉기 무섭게 썰물처럼 퇴조했다. 그리고 그 썰물이 빠져나간 자리엔 어김 없이 수백 수천만명의 기아와 사망 혹은 경제의 쇠락과 사회 문화의 질적 퇴보라는 찌꺼기를 백사장에 남겨놓았다.


지난 몇십년간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데 여념이 없는 서구의 학계와 언론계는 그러한 집단과 개인 간의 역사적 통찰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이 것은 내가 4년간 서구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모국인 영국에서의 유학을 통해 느낀 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나는 더더욱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책을 냈던 2013년 보다도) 개인주의에 내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왜 Simple이냐고? 내가 추구하는 개인주의의 모습은 바로, 큰 정부를 지지하며 이런 저런 잡다한 자신의 행복 추구권들을 주장하고 불평하기 보다, 자신보다 더 가진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보다, 자신이 가진 사소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를 느끼고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simple life의 마음 자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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