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다래 신머루
- Baeminteacher

- 10월 24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29일

이번 여름엔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퇴원한 뒤, 9월부터 한 달 넘게 예술의 전당 근처의 한 재활병원에서 입원을 했다. 나중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재활을 위해 예술의 전당으로 산책을 겸해서 천천히 걸어 다니기도 했다.
초가을 저녁의 예술의 전당에는 공연과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의 들 뜬 표정과 행복한 얼굴들을 볼 수 있어서 나의 건강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옆의 분수대에서는 음악 소리에 맞춰 물 줄기가 춤추는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예전 한 동안 오페라 관람을 자주 즐겨보던 때가 있었다. '대학 오페라 페스티벌'이라는 기획의 행사가 예술의 전당에서 매년 (2010년에서 2012년까지) 초가을에 열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오페라는 관람료가 비싸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행사는 대학생의 공연이라 일반 오페라 관람료보다 훨씬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당시 난 연극 공연에 흠뻑 빠져 있기도 했고, 클래식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자주 오페라 관람을 했다. 그 땐 그 행사가 앞으로도 매년 계속되리라 생각했었는데, 아쉽게도 대학 오페라 축제라는 기획의 행사는 그 이후 다시 접하지 못했다.
입원 환자로 매일 단조로운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또 마침 예술의 전당에 오랜만에 몇 번 산책을 하다보니,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옛 생각에 잠기에 되었다.
살다보면,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고 개인적으로 내 취향에 정말 맞는 상품이나 행사를 보지만, 아쉽게도 이어지지 못하고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나에겐 대학 오페라 축제가 그랬다. 또 하나 생각난게 있다면 금다래와 신머루라는 캐릭터였다.
연세대에 92년에 입학했을 때, 당시 (치과대학 본과에 올라가기 이전의) 의예과는 이과대학 소속이었기 때문에 이과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었다. 그 때 받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책자의 한 페이지에 귀엽게 그려진 커플 캐릭터가 금다래와 신머루였던 것이 기억난다. 난 그 캐릭터가 참 좋았다.
나중에 치과대학 본과 1학년 말에, 정말로 (성 외에) 이름이 금다래인 옆 학교 여학생과 소개팅을 한 것도 기억난다. 애프터 신청을 한 후 잡은 처음 약속이 연대 본관 앞의 언더우드 상 앞에서 보기로 한 것이었는데, 결국 나는 보기 좋게 바람을 맞았고, 이후 잊혀진 기억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 시절의 아련하고 풋풋했던 옛 추억이다.









사족.
금다래와 신머루가 연출하는 저렇게 다양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요즘 스티커 사진을 찍는 어린 커플들을 보는듯한 느낌도 든다.
손수건에 찍힌 since 1989라는 문구를 보니 문득 1989년엔 난 뭘 하고 있었지? 하는 생각도 든다. 고 2 때였으니 미술부에서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만화를 그리는게 더 좋았지만.
그 때는 대학교만 들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 그리기나 실컷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대학 들어가서 만화는 그리지 않았지만, 공부도 하지 않았다. 특히 치대 입학 후 예과 때 내가 읽은 유일한 책들은 사회주의 철학 서적이나 천주교 교리 교육 서적들이었다. 학점과는 전혀 상관 없는 책들. 물론 학과 특성도 있긴 했지만, '내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던, 80년대 경제 호황의 유산이기도 했던 그 당시 대학생들의 일반적인 마인드였다.
요즘 586 세대는 한국 사회에서 여러모로 걸림돌 이미지가 굳어가고 있다. 그들의 이미지는 아마도 그 앞선 시절 고생했던 세대의 덕택으로 꿀을 빨며 젊은 시절을 보내고선, 2000년대 이래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사람 간의 불신이 높아진 한국 사회를 물려 받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 앞에서 자신들의 자아도취적인 세계관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모습일 것이다.
나는 어쩌면 586의 끝자락이자, 한국에서 사회학 연구에서 주로 얘기하는 가장 좌파 성향이 강한 연령대에 속해 있다. 내가 보는 이 연령층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비생산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마지 자신들이 정의롭고 진보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포장하고 있는 데에 있는 것같다.
내가 대학시절 공부를 안했던, 아니 안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욕심이 없고 타인과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그런 착하고 정의로운 인간이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의 반영이고 그 앞선 시대가 선사한 선물을 누리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80년대 말 90년대초) 대학생들의 사고는 '이 사회를 보다 좋은 사회로 개혁하고 진보시키는 사명'에 눈 감는, 즉 사회의식 없는 모습은,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시대의 부조리에 눈감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 앞선 세대가 새마을 운동으로 상징되는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으로 세계 시장 속에서 수출하며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이루어낸 귀중한 성과를 가볍게 인식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람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 끊임 없이 '다른 것은 더 없느냐'고 묻고 따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내가 속한 세대의 실상은, 앞선 세대는 마치 무지몽매하여 감히 꿈 꾸지도 못했던 타이틀,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 권위주의 독재의 부조리에 저항한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정치 레토릭에 스스로를 세뇌시킨, 이상주의적이고 몽환적인 지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일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근면과 절약보다는 '나'의 소중함과 행복추구권을 얘기하며, 자기책임감(self-responsibility)보다는 정부의 지원과 보상을 보다 쉽게 들을 수 있는 사회에 와버렸다. 하지만 부지런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자립이 안된 사람을 신뢰하고 그와 협동할 수 있을까. 그런 근로자를 사원으로 채용할 자신이 있는가. 그런 배우자와 결혼 생활을 할 자신이 있는가. "너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 나는 배짱이처럼 쉴테니. 그리고 너는 자립을 해, 나는 너한테 의존할테니" 라고 말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사회적 신뢰와 협동은 당연히 점차 감소하는 것이다. 저성장과 불신의 사회는 자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비생산적인 문화와 무책임한 교육의 결과일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세상에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cost 가 수반되며 consequence가 따라온다. 소위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잘 살사는 나라를 만드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그 사회 구성원들의 노동 생산력 수준에 달렸다. 즉 열심히 일한 만큼 잘 살게 된다. 물론 '열심히'의 의미는 인간의 모든 육체적, 지적 측면을 다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을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마술은 오직 시장의 경쟁 시스템에서만 발휘된다는 것을 인류의 역사는 말하고 있다.
어느 분야든 보다 큰 시장, 즉 보다 많은 자본이 투자되고 있는 시장에 가면 보다 열심히 일해서 excellent performance를 보여주는 스타들, 가령 오타니 쇼헤이 같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시장의 경쟁이야말로 (변덕스럽기 그지 없고, 같은 결과를 얻을 수있다면 조금이라도 손가락을 덜 움직이고 그 결과를 맛보려는, 본능적으로 게으른) 인간을 절제하고 성실하며 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동물로 만드는 마술이다.
애초에 '이 사회를 보다 좋은 사회로 개혁하고 진보시키는 사명' 따위는 허구의 관념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회 개혁은 커녕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자각이나 계몽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인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인간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다만 시장의 경쟁 속에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천사처럼 이타적이고 성실하게 행동할 뿐이고, 일정 이상 규모의 공동체 집단 속에서 무책임하게 꿀을 빨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한 없이 악마와도 같이 게으르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동물일 뿐이다.
이러한 비정하게 들리는, 냉소적인 인간에 대한 단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그런 인간의 굴레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즉 인문학적인,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해나가면 된다. 외롭고 고독한 노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개인주의의 철학과 도덕을 역사 속에서 경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시장 속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며, 오히려 시장 속에서 쉽게 해나갈 수 있다. 조선 성리학자들이나 Marxist, Maoist들처럼 그런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을 가진 동물인) 인간의 본성을 조련하거나 개조하려 드는 정치 집단이 구축한 사회는 처참한 결과들을 초래했다.
다시 근면, 자조, 협동의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시장과 경쟁을 긍정하자. 이것이 못 살던 시절 우리가 잘 살수 있게 만들어준 요인이며, 앞으로 다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인이다.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정부가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결국 정부에 의지하게 만드는) 큰 정부 주의자들의 그 어떤 포퓰리즘적인 달콤한 유혹보다도 이것이 경제 성장과 출산율 상승을 가져오는 마술의 열쇠이자, 사회의 정석이다.
적다보니 사족이 길어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