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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eminteacher

My chapter in a forthcoming book







2016년 가을이었다.

내가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처음으로 학술 컨퍼런스 발표(presentation)를 하게 된 장소는 핀란드의 Oulu 대학교였다.

이는 또한 2014년 가을부터 영국에 머물던 내가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유럽 대륙을 다시 여행하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Oulu 대학교 인근의 호텔 방을 인터넷으로 예약한 후 헬싱키를 거쳐 Oulu라는 자그마한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작은 도시에 대해 내가 받은 인상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특색 없는 무난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미 비슷한 느낌의 스코틀랜드 자연에 익숙해져서 그 crisp air 가 주는 청량하고 상쾌한 느낌도 그 다지 새로울 게 없었을지 모르겠다.


2016년 당시 다음(Daum) 블로그에 나는 컨퍼런스가 끝나고 Oulu대학 자연사 박물관과 Oulu시 미술관 등을 홀로 여행하며 든 느낌을 글로 적었었다. (링크: Stuffed Owls and ceramic crafts)

작고 어두웠던 Oulu 공항 만큼이나 Oulu 도시는 조용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영국의 대부분의 도시 역시 그랬기에 별로 독특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단지 스코틀랜드의 단조로운 회색 벽돌 건물에 이미 익숙해져 있던 내게 건물마다 달리 색칠된 알록달록한 도시의 색체는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오긴 했다.


특별할 것 없던 핀란드 여행의 마지막을 중간 경유지인 헬싱키에서 하루 (1박 2일) 묵게 되었다.

Oulu에서처럼 눈이 계속 내렸는데, 눈길을 헤치고 미리 검색해서 알아둔 경로로 헬싱키에서 유명하다는, 암석 교회 (Rock church)를 걸어서 찾아갔다.

오후 즘 내가 찾아가던 그 시각에 맞춰 눈은 사정 없이 내려왔다. 앞이 잘 안보일 정도의 눈을 맞으며, 목적지를 찾아간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눈을 피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교회엔 거의 아무도 없었다. 그런 날씨에 방문객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교회 반주자인 듯한 누군가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고, 교회 안의 조용하고 차분한 공기는 눈발과 싸우며 걸어온 내 기분을 편안하게 달래 주었다.

말 그대로 교회일 뿐이었기에 별다른 볼거리는 없었고, 애당초 볼거리를 기대하고 간 것도 아니었다.

단지 적막한 낯선 도시를 홀로 여행하는 기분을 즐기고 싶던 차에 찾아가본 장소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날 그 교회 안에서 내가 느꼈던 마음의 위로는 꽤 오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교회를 나와 교회 앞에 있던 한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당연히 암석교회와는 별 관련 없는, 핀란드 여행 기념품을 파는 가게였다. 괜시리 공항에선 쳐다보지도 않았던 기념품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고 기분 가는 데로 기념품을 하나 사기로 했는데, 낙점된 아이가 바로 지금도 내 방에서 쓰고 있는 무민 (Moomin) 캐릭터가 그려진 스테인레스 컵이다.


Moomin cup, 2020


서울의 미세먼지 자욱한 공기 속에 지내는 지금은 그 북유럽의 차갑고 건조하면서도 청량한 공기가 그립지만,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공기에 너무나 쉽게 익숙해진다.

서울에 돌아와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의 풍경은 매케한 공기 속에 다들 자신의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었다.

도로는 비행기 활주로 마냥 지나치게 넓고, 보행자 '따위'는 이 자동자 왕국처럼 보이는 서울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서울에서 보행자로 걸어다니면서, 어릴 적 읽었던 시골쥐와 도시쥐 이야기에 나오는 도시쥐의 모습이 나 자신과 오버랩되는 느낌이 자주 들곤 했다.

(참고로, 영국의 경우 도시 안에서 모든 교통 법규의 기본은 '보행자 우선', '자동차 후순위'의 원칙이다. 줄을 세치기하는 것을 극도로 비신사적이라고 생각하는 영국인들이 별로 범법을 의식하지 않고 무단 횡단하는 모습은 거의 일상적이다. 에딘버러에선 왕복 2차선의 오르막길에서 버스 조차 경적 한번 울리지 않고 힘겹게 페달을 밟는 자전거를 조용히 뒤따라가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다.)


4년간 위생(hygiene)과 의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와중에 공기에 대한 유럽인들의 역사적 관심도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세기 내내 유럽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정서는 낭만주의 그리고 자연주의였다. 이는 문학이나 예술 뿐 아니라 의학 철학사 (the history of medical philosophy)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했다.

지금도 영국에서 (요트나 경비행기를 모는 사람도 많긴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이 가족과 함께 기분 내는 방법은 자연으로 떠나는 것이다. 굳이 캠핑이 아니더라도 영국의 어느 타운이든 한 시간 거리 이내에 숲이 우거진 자연 속을 마음껏 거닐 수 있는 곳은 널려 있다.


조용한 숲 속을 산책하는 것을 필수적인 삶의 요소로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모습 만큼 한국인의 삶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그리고 유럽인들이 딱히 생각이 고차원적이고 지성이 발달해서 그런 자연주의적 삶의 방식이 발달했다기 보다, 이는 19세기부터 100년 넘게 도시의 비위생과 대기 오염이라는 사회적 비용(social cost)을 톡톡히 치르면서 배운 교훈이자 후진 개발국에게 비위생과 오염의 삶의 방식을 팔아치우면서 지켜낸 성과이기도 하다.

실제로 후진 개발국들은 선진국이 팔아 치우는 고비용 저효용의 삶의 방식을, 이를 포장하는 '고급스런'(luxurious) 이미지를 통해, 지금껏 구매해왔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인간의 뇌 구조 상, 이러한 선진국 기업들의 세일즈 전략은 시장 자본주의가 미성숙한 후진 개발국에서 배금주의에 젖은 졸부들에게 탁월하게 먹혀들어갔으며, 이후 이들 개발국 내에서도 신생 기업들이 그런 고급 이미지로 감성 포장된 제품들을 자체 생산하여 내수 시장을 지금껏 키워왔다.

그 대표적인 아이템이 바로 '자동차'였다.


영국으로 유학 가기 전, 몰던 차를 팔면서 '내 인생에 두번 다시 차를 사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 사실 그 때는 개인주의자로서 내 삶의 이정표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에서 내린 결단이었다. 즉 한국사회에서 직장을 갖고 살아 오면서 관습처럼 구매했던 물건 중 하나가 자동차였고, 철저히 사회적 시선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니 '없어도 괜찮겠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의 그 결정이 나의 또하나의 중요한 철학, 즉 자연주의적 삶의 원칙에 의해 보다 확실하게 굳어지게 되었다.


문득 유학 시절, 깨끗하고 상쾌했던 공기(clean and fresh air)와 관련된 작은 상념을 적다 보니 길어졌다. 내가 개인적으로 기획 중인 책의 집필이 늦어지는 사이, 예전 박사과정 연구 주제와 관련된 나의 논문이 실린 책이 먼저 출간되었다.

내가 쓴 chapter는 Chapter 10. Promotion of a Modern Holistic Vision of Hygiene: E. W. Lane's Hygienic Medicine in the British Medical Market, 1850s–1880s.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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