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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eminteacher

자연치유력 살린 도시로의 회복



-신종 전염병이 초래한 비상 상황엔 집단주의 광기도 투영돼. 대구와 신천지로 관심 좁혀져

-인간 몸과 건강에 대한 전체론적 시각보다 질병에 대한 환원론적 시각에 치우치는 건 위험

-위생은 건강을 위해 존재하건만 한국도 중국처럼 자연 바람 쐬면서 살지 못하는 사회가 돼



최근 한국 사회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 사회에선 한번 발동이 걸리면 그 집단주의 사회의 자체 동력에 의해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순식간에 난도질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기에, 특히 신천지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초래된 상황이 한국 사회 내부의 파괴적인 열정 즉 집단주의의 광기가 투영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탄핵 이후 우리 사회에 불붙은 극심한 좌우 대립은 어김없이 현 감염 확산 사태와 맞물려, 가령 중국인 입국 이슈와 관련해서 심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럴수록  ‘공포에 사로잡힌’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개인은 보다 객관적인 성찰,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함께 숨쉬는 ‘공기’와 관련하여 모두가 불편해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며칠 전 상가 건물을 지나다가  ‘신천지 출입 금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딱히 그 가게의 주인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문제라면 바로 그런 현상들을 자연스레 나타나게 만드는 이 사회의 집단주의 광풍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약자를 강자로부터 보호하기보다 약자를 강자가 입 막음하는 수단으로 종종 쓰여온 명예 훼손 고소 역시 강자인 정부 앞에 약자인 신천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못 된다. 만약 일반 시민 한 명이 신천지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마도 사실 여부의 검증을 떠나서 명예 훼손 고소를 당했을 확률이 높다.


굳이 보건학, 특히 역학조사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라도 지금까지 한국에서 강제로 코로나바이러스를 테스트 받은 유일한 집단이 신천지였고, 신천지라는 특정 모집단의 상대적으로 높은 검사 비율은 전국 확진자 통계 수치에 있어 심각한 불균형 및 착시 현상을 초래했으리라 보는 것은 합리적 의심에 해당한다.


해외 일부 미디어 기사에서 일본이 한국처럼 테스트를 철저하게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확진자 수가 많이 나왔을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한국 사회 내에도 신천지를 제외한 다른 한국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 역시 증상도 심하지 않은데 굳이 상당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코로나바이러스 테스트를 받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가령 지난 달 중순 문제의 발단이 된 (신천지 예배에 참석하여 급격한 바이러스 확산을 초래했다고 알려진) 31번 환자를 포함해 이미 29번, 30번 환자부터 감염 경로는 파악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에 다녀온 적도 없는 이들 환자들은 중국에서 감염되어 들어온 누군가에 의해 감염되었던 것이 분명함에도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지난 달 초에 이미 감염 확산이 지역사회로, 통제가 힘든 상황으로 조용히 이행되고 있었을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유추 가능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31번 환자 확진 이후 오직 대구와 신천지만으로 국가적 관심의 폭이 좁혀지고 검사와 조사도 집중되었다.


그런 가 하면, 며칠 전 어느 진보 계열 의료단체의 성명에서 외국인 혐오를 반대한다며 중국인 입국 금지에 반대한다는 글을 보았다. 국내 지역간 봉쇄와 달리 국가 간의 입국 절차는 현대 사회 감염 확산 방지에 있어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그 진보 의료인들은 신천지는 이단의 속성 상 페쇄적으로 자신의 감염을 숨기려 한다고 전제하는 듯하면서도 중국인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보는 듯했다.


중국인이 계속적으로 입국해온 상황에서 감염자의 능동적 자기 검진을 그들 모두에게 내국인과 같은 수준으로 기대하는 것은 상당히 이상주의적 접근이다. 외국에 입국한 후 행여나 감염되어 그 사실이 알려질 경우 자신이 그 나라에 바이러스를 수출했다는 오명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방역당국에 의해 이번에 감염 사망자가 대거 나온 것으로 알려진 대남 병원 요양원에서 일했던 조선족 간병인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발표된 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지금껏 당연하게 여기며 숨쉬어 온 ‘공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한 가지의 근본적 문제를 한국 사회에 제기하고 있다. 이미 일반인의 감염 방지 조치와 관련하여 마스크를 써야 되네, 안 써도 되네 하는 논란이 이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번 겨울,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미세먼지는 이미 저편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사실 중국에서 연간 미세먼지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들 숫자보다 결코 적지 않다. 가령 이미 2013년에 Lancet의 한 논문에서 그해 PM 2.5수준 미세입자 노출로 인한 중국인 유아 사망자의 수를 916,000명으로 계산했었다.


미세먼지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가, 혹은 마스크를 쓰느냐 마느냐 등의 질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인이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 우리 자신의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건강하게 살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려 왔다는 사실이다. 이 현실의 근본에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사고의 경향성이 지극히 자연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몸과 건강에 대한 전체론적 (holistic) 시각보다 질병에 대한 환원론적 (reductionist) 시각에 치우쳐 있는 모습이다. 현대 면역학과 비교할 때 인간과 자연을 보는 시각이 달랐던 서양의 전통적인 hygiene(위생) 관념 역시 그 핵심은 개인이 자신의 생활과 환경에 대한 관리를 통해서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의 몸에 깃든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데에 있었다. 가령 19세기 유럽에선 ‘exercise in the fresh air’가 social reform의 주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서울은 더이상 그 도시에 살고 있는 개인에게는 ‘바람이 불지 않는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물론 바람은 불긴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반기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 아니 귀찮아하고 더 나아가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연신 틀어 대며 창문을 하루 종일 닫아 걸고 살아가는 모습. 가을과 봄이 찾아와도 아무도 창문을 마음 놓고 열지 못한다.


미세먼지는 매년 심해져 왔지만 차와 도로는 갈수록 더 늘어나고 숲은 사라지고 있으며, 도저히 건강해질 수가 없는 상황으로 도시 환경은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혈당 수치와 칼로리 섭취량만 들여다보며 살고 있고, 예방의학조차 돈이 되는 건강 검진에만 집중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이 모는 차종을 자신의 경제적 수준 혹은 사회적 지위와 연결시키는 모습은 그야말로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속에 살고 있는 도시인의 한심하고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외부 자연 공기가 편안하게 숨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면, 창문이나 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이 바이러스 감염을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자연 바람과 환기에 대한 강조보다 손소독제와 마스크 사용에 비대칭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위생은 건강을 위해 존재한다. 중국처럼 한국도 사람들이 자연 바람을 제대로 쐬면서 살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바이러스든 미세먼지든,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개인들은 자신들이 숨쉬는 공기가 더 이상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에 도전 받고 있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방역 조치도 중요하지만, 특히 도시 환경과 관련하여 이번 기회에 손소독제와 마스크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환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공기를 사회적으로 만들어가고 이를 통해 개인들의 근본적인 면역력도 높여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적 각성이 일어나길 빌어본다.











제3의길 기고: 제3의길 89호 [2020년 3월 10일] 게재 기사

해당 기사 링크: http://road3.kr/?p=29681&cat=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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