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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과 오만

  • 작성자 사진: Baeminteacher
    Baeminteacher
  • 8월 5일
  • 1분 분량



 회동 저수지 근처의 산길, 부산 금정구 (July 2025)
회동 저수지 근처의 산길, 부산 금정구 (July 2025)









*아래 기고문은 지난번 적었던 '금요일의 살리 밥상' 포스트의 뒷부분을 수정하여 기고한 글입니다.



 

예전 한 때 (특히 영국에 있던 시절) 인생은 battle field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타인과 싸우는 battle 이 아닌, 내 안에 존재하는 selfish, addictive, destructive 욕망과 싸우며 나를 better self로 만들어 나가는 여정으로서의 의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이 신화를 좋아했다. 방황하며 숱한 위험과 유혹에 맞서 결국 자신의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딧세우스의 이야기 속에서 뭔가 내가 희구하는 미래 상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던 것같다. 



하지만, 지금은 인생은 신의 guidance 라고 믿는다. 나의 노력과 애씀도 결국 인간의 제한된 지식과 능력의 틀 속에서, 나 혼자 그렇게 믿어왔던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자각을 하고서부터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이다. 20대 시절의 신앙적인 나로 다시 회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천주교라는 혹은 기독교라는, 내가 몸 담고 있는 종교의 정형화된 예식 혹은 가르침 보다는, 나 자신을 더 낮추고 나 자신을 더 열고 (open) 보다 겸허하게 신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에 중심을 두고 있다. 



결국 종교의 본질은 인간이 겸허하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을 한없이 더 낮추고 비우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욥기 (the Book of Job)나 내가 철학자 중 가장 좋아하는 스피노자 (Baruch Spinoza), 그리고 내가 연구하는 의학사 (the history of medicine)는 나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도록 인도하는 길잡이이기도 했다. 



인간이 자신의 이성으로 뭔가 진리를 찾았다고 혹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오만하게 떠들지만, 인간은 결코 신이 아니며 인간의 지성은 신 앞에서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먼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의학사를 공부한다고 말하면, 뭔가 지금의 눈부신 의학 수준과 관련하여 그에 기여한 뛰어난 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성과를 떠올리지만, 애당초 내 관심사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공부를 하면서 더 깨닫게 되는 것은 왜 수천년 동안 종교가 의학의 역할을 대신 (사실 의술은 종교 활동의 일부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했는지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는 지금의 기준으로나 의학사적 관점에서 보면 quack doctor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현대 의학이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이 과연 인간의 몸 (자연의 일부로서의)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이다. 사실 치과대학을 졸업하던 무렵부터 그 기계론적 접근과 그 기저에 깔린 환원론적인 철학적 틀에 거부감이 생기긴 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회의감과 거부감에 죄의식 (의사로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을 떨쳐버리고 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게 된다. 



신학이든 의학이든 역사학이든, 어쩌면 인간의 많은 학문들 안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들 (학자들 혹은 지식인들)이 가지는 오만과 배타성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단을 좋아한다. 물론 이단 종교인들이 하는 말을 내가 믿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단이 자유로운 사회가 진정 자유로운 사회라고 믿는 까닭이다. 



나는 Marxism을 – 20세기 세계사적인 불행 (지금 현재까지도)을 초래한 지극히 오만한 인간적 신념에 불과하다는 나의 시각에서 – 싫어하긴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불행은 그 Marxism이 20세기 거의 내내 사상적 이단으로 몰려 억압받았던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전반 일본 제국처럼,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공산주의를 이단으로 (마치 19세기 말 동학에 대해 조선왕조가 했듯, 혹세 무민한다는 명목으로) '억압'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이러한 모습은 1960-70년대 내내 사회주의 좌파가 열풍처럼 사회 문화를 휩쓸었던 서구권과 남미를 비롯한 전세계의 사상적 조류에 역행하는, 분명 '반동적'인 상황이었다.  



좌파 사학자들은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권력을 위해 그런 반공 정책을 펼쳤다고 보겠지만, 나는 6.25 전쟁으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라고 본다. 그 전쟁이 아니었다면 한국인들이 공산주의를 그렇게 극혐할 까닭이 없었다. 여하튼 사회주의 시각을 가진 지식인들을 이단으로 몰아 억압한 결과, (이 이단아들이 주도한 각종 '민주화' 운동들을 통해 수립된) 1987년 체제 이래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분열은 그 후폭풍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시계추가 오른쪽으로 너무 멀리 갔다가 이제는 왼쪽으로 너무 멀리 가버린 모습..



좌파 사학자들은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반공 독재자'들을 (특히 반공 시대 정치인의 마지막 상징이었던 전두환을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악마화해 왔다. 한 때 이단시 되었던 좌파 사관을 가지고, 이제는 자신들이 orthodox가 되어 역사 속 인물과 정치집단을 이단으로 단죄하는 모습일 뿐이다. (자신들의 신념을 '진보'라 오만하게 자칭하는) 한국의 좌파 정치세력들은 심지어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역사적 재해석의 가능성까지 봉쇄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는 인간의 오만의 역사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이 다르다고, (자신들도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이단 혹은 비주류에 불과했으면서도) 스피노자를 파문했던 17세기 네덜란드 유대인들의 모습은 인간의 역사에서 계속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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