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 Baeminteacher

- 4월 1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월 29일

나는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정서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지극히 병들어 있는 사회이며, 경제적,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침몰하는 배와 같은 사회이다.
만화 '소용돌이'의 주인공 슈이치처럼 나는 이 사회가 이미 소용돌이의 마수에 휘말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가진 몇 가지 병리적인 사고 방식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 민주주의의 환상
사회민주주의 (social democracy)의 병폐는 20세기 서구 여러 나라들을 거의 침몰시키다 시피했는데, 이 중 몇몇 국가는 뒤늦게 정신차리고 그 늪을 헤어나오려 하고 있으나 결코 쉽지 않다. 사민주의의 덫에 걸려든 새로운 젊은 세대 희생양이 계속해서 그 늪의 바다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 시장 맘다니를 뽑은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을 보면 얼마나 그 늪과 덪이 강력한 마력으로 헛똑똑이들을 현재 진행형으로 세뇌하고 있는지 알 수있다. 시애틀에서 그랬던 것처럼 뉴욕은 빠르게 반기업 반시장의 디스토피아로 전락하고 있으며 기업과 브레인들은 앞다투어 이 도시를 탈출해 공화당 주로 이주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은 탈출구도 없고 브레이크도 고장난 폭주 기관차와 같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성찰 없이 폭발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사회주의에 대한 음험한 낭만적 동경과 결합해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사회이다.
집단주의 사고 방식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지적, 도덕적 책무보다 민주주의 원칙이 강화된 결과 크고 작은 모든 사회 단위에서 권력이 일상에서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개개인의 자율성과 책무성이 도외시 된채, 나의 권리와 이해관계, 우리들의 정서와 연대를 강조하는 사회는 그 자체가 권력에 의해 철저히 작동하는 사회이다.
권력은 관계를 지배한다.
거기에 개인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은 위협당하게 된다.
권력보다는 돈이 개인의 공간을 덜 위협한다.
권력이 지배하는 공간은 수직적이며 위압적이고 폭력적이지만,
돈이 지배하는 공간인 시장은 그에 비하면 훨씬 평화롭고 인간적이며 도덕적이다.
돈이 지배한다는 것은 상호계약, 선택의 자율성에 따르는 책임, 상호 존중을 의미하지만, 한국에서는 돈은 그저 나쁘고 악하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문제는 따로 권력이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팻말을 붙이고 있는 곳은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집단주의적 공간은 사실상 권력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보면된다.
한마디로 우파적 시장 경쟁 보다 좌파적 권력 의식에 젖어있는 모습이 한국 사회의 일상이다.
하지만, 자원 배분은 궁극적으로 가치의 우선 순위가 결정할 수 밖에 없다.(즉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뼈아프게 결정해야 함) 이는 경제학이 18세기까지 도덕 철학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며 이런 이유로 내가 볼 때 경제학은 사회학보다는 도덕 철학에 더 가깝다.
즉, 경제학적 시각의 부재와 정치적 민주화의 신성화는 사회를 기이한 방식으로 부조리하게 만든다.
흔히 좌파와 우파는 대화가 안되고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고 힘들다고 말한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좌파이다.
그런데 좌파 사상에 세뇌된 한국인들은 자신이 좌파라고 생각하지 않는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러니 세뇌가 된다.
자신이 지지하는 민주당의 mouthpiece가 되어버린 legacy media에 의해 밤낮없이 세뇌당하면서도 모른다.
대부분의 좌파 사람들은 세상을 뭔가 아름답고 정의로운 (just) 것으로 정의 (define)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마키아벨리의 책이나 하이에크의 책은 읽기에 듣기에 너무 불편한 사상이고 그래서 hate speech이며 cancel의 대상일 뿐이다.
대신 그들은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들은 의학도 경제학도 배운 적이 없으므로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고 인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모른다. 너무 어려운 지식일 뿐이다.
그들은 본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세상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소설의 글, 영화 속의 이미지로 이해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의 원인과 어떤 현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자신이 쓰는 말 그리고 개념들의 본질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로 말을 하고 대화를 한다.
말이나 대화가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허위 행동에 불과할 뿐이다.
이는 그들이 의도하건 하지 않건 그렇게 된다.
신뢰의 증발
한국 사회의 문제는 결국 함께 추구해나갈 혹은 지켜야할 가치의 부재와 그로 인한 상대편의 악마화, 즉 신뢰의 공백에서 온다.
노사 갈등, 남녀 갈등, 세대 갈등.. 모두..
그냥 갈등 사회다.
사회주의 세계관에 경도되어서 가진자에게서 못가진자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사 관계 뿐아니라 사회의 모든 관계가 집단 권력 투쟁의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이 되었다.
말을 그렇게 안할 뿐 (한국의 우파 세력은 자신의 사회를 해석하는 도구도 없다) 현실이 그렇다.
당연히 기업이 만들어지지 않고 투자가 계속 이어지지 못한다. 혼인도 이루어지지도 지속되지도 못한다.
이런 사회주의 세계관에 잠식된 집단 갈등 사회에서 공격성이 발달한 일부 좀비들(진상.. 이라고도 부른다)이 사회를 휘젓고 다닌다.
그리고 하이애나 같은 진상들이 활개치는 사회 속에서 얼룩말 같은 순진한 사람들은 상처 받은 내면을 힐링 소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다.
피로사회?
피상적인 해석이다. 깊이 없는 사회학적, 심리학적 해석일 뿐이다.
법이 느슨해서?
역시 현상에 대한 원인일 뿐 근본적 진단이 아니다.
해답을 못찾는 사이 사회적 신뢰 관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출산율, 혼인율, 기업 활동 모두 극심한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좌파적, 반시장적, 반기업적 정책으로 인한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성찰의 부재로 인한 결과이다.
협동하는 개인주의 사회.. 이 이상을 체화하는 상징이 바로 기업이다.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와 나르시시즘적 이기주의 문화는 시장과 기업이 발전하고 성숙하기 어렵게 하며, 상대적으로 정부에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비효율과 부패에 취약해진 비대한 정부를 낳았고, 사회문제를 돈을 풀어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무지와 만용은 돈을 과다하게 찍어내는 결과를 불러왔을 뿐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불균형하게 노조의 편을 드는 반기업 정책과 기업에 혹독한 세금 정책들을 양산하였다. 사회주의 시각을 바탕으로 그리고 규제 만능 사고에 젖어 이러한 정책들을 펼쳐온 정부를 지지한 국민은 바로 자신들의 지지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자본의 이탈
자본은 이미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대한민국을 이탈할 것이다.
자본은 인구를 해당 영토에 묶어 둘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인데 한국 사회는 이 자본을 해외로 계속 유출해왔다.
선한 명분이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18세기 계몽주의적 낙관주의는 결국 사회를 비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가령 내가 느끼는 이른바 '착한 기업' 혹은 '사회적 기업' 논의의 불편함은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토론할 때 착한 논의를 하는 것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과 좌파 학자들을 자주 본다. 그들은 그런 착한 주제의 연구를 하고 정책적으로 착한 정책을 요구하는 자신을 마치 도덕적인 사람으로 스스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물론 절실하고 정말 중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진해 나가야할 가치일 뿐이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은 가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착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침이 없으나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정부가 국가가 개인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를 강요해선 안된다.
그건 개인의 몫이지 국가의 몫이 아니다.
국가나 학교는 타인과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를 금하는 기본 규율을 가르치고 강제할 수 있을 뿐이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다양하듯, 무엇이 착한 사람인가에 대한 정의는 개개인 각자가 다른 법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착한 기업은 그 개념 자체가 너무나 집단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다. 그래서 듣기 불편하다.
이 모든 문제의 가장 근본 원인인 사회주의 좌파 사상의 위험성을 깨닫고 스스로 세뇌 상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한 한국사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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