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개념의 신성성은 1980년대 이래 정치, 사회 및 경제의 전 부문에 걸쳐 모든 대의와 명분을 장악해오고 있으며, 날이 갈 수록 이 기세는 더 강화되고 있다. 특정 정치 세력에게 '반민주세력’이라는 낙인을 서슴없이 붙여온 좌파 집단들의 행동은 나날이 과감해져서 이제는 여기에 '극우세력’ 혹은 '친일 반민족세력’이라는 라벨까지 만들어 자신들의 사회적 시각과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해대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선점한 이래 지금껏 이 가치를 점유해온 한국의 좌파 집단들에게 아마도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1980년의 5·18 광주 사건일 것이다. 한국의 좌파 집단들은 이 사건에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필요로 하는, 즉 명분으로 내세울, 핵심 가치를 담고자 노력했고,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어 5·18 광주 사건은 '민주화운동’이라는 타이틀을 공인 받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 타이틀에 회의적인 혹은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은 상당히 사회적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러한 길을 걸어오게 되었을까? 물론 과거 군인 정치가들의 리더쉽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해 누렸던 정치권력의 타성에 젖어서, 그러한 자신의 정치권력에 아무런 원칙도 철학도 담지 못했던 많은 우파 정치인들이 이 흐름에 일조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적 자치의 원칙과 시장경제의 철학을 도덕과 지성으로 무장한 '경쟁력 있는’ 우파 정치 신예들이 정치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던 한국 정치의 하드웨어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을 집단주의의 화신인 '위험한 동물’로 인식하는 나 같은 개인주의자의 시선으로 볼 때, 선동가(demagogue)들이 뛰어 노는 정쟁(political dispute)이라는 놀이터에서 민주주의(democracy)는 어디까지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한 절차적 원칙일 뿐이다. 사실상 선거와 (대의제 민주주의의 경우) 정당이라는 외형을 넘어선 민주주의의 본질은 결국 넓은 의미의 다수결(majority rule)이다. 가령 선거는 결국 어느 정당이 그 사회 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이며,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법 역시 그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이해관계와 근접하게 만들어지게 된다.
헌법적 가치를 언급하며 기본적 인권과 표현의 자유 등의 가치를 민주주의의 요소로 거론하지만, 이는 절차적 원칙인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기 보다 자유주의 철학(사상)의 본질이다. 이를 혼동해선 안된다. 19세기에 서양에선 고전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가 변화를 겪으면서 민주주의와 결합하게 되는데, 20세기 냉전체제 하에서 호시절을 누리던 자유진영 사회의 좌파 지식인들은 자유주의 철학에서 자신들이 명분 삼기에 좋은 요소들 (주로 경제적 자유는 빼버리고 기타 자유 요소들)만 집어 넣어 현대 민주주의를 자의적으로 정의해왔다. 자연과학과 달리 개념 자체가 학자들과 지식인들에 의해 계속 변용되어온 사회과학 용어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이렇듯 '자의적으로’ 민주주의 개념을 써왔으니, 공산진영 국가들 역시 20세기 내내 자신들이 민주주의 정치를 하고 있음을 웅변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흔히 '북한이 무슨 민주주의냐’ 혹은 '그럼 북한도 민주주의라는 소리냐’고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자의적으로 지식인들이 규정해온 민주주의라는 개념의 본질을 감안하면, 그렇게 얘기할 수 없다. 즉 북한은 민주주의 맞다. 왜냐하면 절대 다수 구성원인 노동자와 농민 계급이 자본가를 몰아내는 데 지지해서 세운 정권이니 그 정권이 독재정권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민주주의 (다수가 동의)인 것이다. 집단주의 성향의 인간이라는 동물의 역사를 사회생물학적 측면에서 고찰해 보면 이른바 '대중독재’의 개념 역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을 감안할 때 민주주의는 무슨 대단한 인간 사회의 신성한 원칙도 아닌, (다른 대안이 없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동물적인 의사 결정 방식일 뿐이며, (보다 다수인 편이 자신들의 힘을 행사하는) 집단주의 전략이 지배하는 인간 정치 행위의 속성이기도 하다. 침팬지 무리에서도, 덩치 크고 주먹 세다고 무리를 장악하는 알파 메일(alpha male)이 되지는 못한다. 이른바 '자기편 만들기 전략’에 뛰어난 침팬지가 무리를 장악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 역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보호해 나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동지를 가능한 한 많이 끌어 모으는 집단주의 전략이다.
흔히 대중은 민주정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정치, 혹은 반쯤 미친 개인 독재자를 떠올리지만 이는 매우 피상적이고 단순한 인식일 뿐이다. 역사의 어느 독재자도 조폭 두목처럼 힘으로 민중을 억압하는데 주력했던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정교한 (혹은 투박한) 선동과 세뇌 기제를 통해 민중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를 위해 지배층의 동의와 지지를 조금이라고 더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이기적인 이유는, 동지들로 이루어진 집단 내에선 상호 부조의 룰이 기능할 지 모르나,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집단 간의 갈등 해결이 힘의 법칙에 근거하여 (쌍방이 아닌) 일방에게 유리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권력이 더 강한 집단이 룰을 결정하게 되며 (입법권을 행사하게 되며), 권력이 약한 집단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 시장의 메커니즘은 사는 측과 파는 측이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서로 상대편의 복지를 고려하고 효용을 주고 받는 윈 윈이 조금이라도 가능하지만,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은 돈과 같은 가치의 교환 척도가 없으므로 힘이 강한 측이 룰을 정한다. 제 아무리 아름답고 정의로운 미사여구로 포장해 보았자, 칸트 (Immanuel Kant)가 정확히 언급했듯이 돈보다 더 신뢰 될 수 있는 (정치적) 권위 따위는 없다. 정치는 경제보다 더 집단주의적이고 더 이기적이며 더 폭력적인 영역이다. 이러한 인간의 정치 행위의 본질을 선하다 악하다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이것은 그냥 인간의 본성이므로 제도나 사상을 이야기할 때 (좌파 사상가나 인문학자들이 얘기하듯) 극복해야 할 부분이 아닌, 오히려 제도와 사상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 '상수’로서 적극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집단주의적 다수결이라는 원시적 민주주의의 본질에서 더 나아가 근대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체제가 발전을 이루어낸 부분은, 이렇게 자기편 만들기 전략이 횡행하는 진흙탕 싸움인 인간 집단 간의 정쟁을 의회라는 형식과 틀을 통해 피 흘리지 않고 말로 자유롭게 다투도록, 그리고 선거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모두 정치경쟁의 결과를 따르도록 한 것이었다. 정치 영역에서 자연스러운 원칙인 민주주의가 경제 영역에서 시장의 원칙인 자유주의와 결합한 것이다. 물론 이것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집단주의적 동물인 인간이 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새로이 설계된 제도 (즉, 경제적 시장의 원리를 차용하여 정치 '투쟁’을 정치 '경쟁’으로 변환)를 받아들이는 것만 수백 년이 걸렸다.
가까운 예로 조선시대만 해도 갈등하던 지배집단들은 승패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복수와 원한 속에 서로가 서로를 저승으로 보내지 못해 안달이었고, 이긴 쪽이 싸그리 독식하는 (심지어 말단 지방 수령도 이 독식에 가담한 결과가 바로 백성들에 대한 후안무치한 수탈이었다) 구조였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했던 폐쇄 집단주의 사회 조선을 현대 자본주의 국가와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조선 시대 붕당 정치가 마치 자유민주주의 정당정치와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역사가들은 후자의 역사적 의미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5·18 사건이 한국 민주주의 발달의 이정표가 된 사건으로 신성시되어 지는 한국사회의 정서와 관계 없이, 5·18 사건은 그 이전의 신군부 정권에 의해 계획된 (투박하고 건조한) 폭력적 정치행위에 대응해 비슷하게 폭력적인 수단으로 (하지만 열정적인 명분으로 포장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한, 확대된 규모의 정쟁이 그 본질이었다.
한마디로 정치적 쿠데타에 대항하는 폭동 사태였다. 분명 그 당시에는 후자를 지지한 정치 세력 만큼이나 전자를 지지한 정치세력도 상당 수 존재했다. 전자를 지지한 대중을 반공 교육에 세뇌된 무지한 국민으로 보는 것은 독선적인 역사적 시각이다. 민주주의에 언제 선동과 세뇌가 없었던 때가 있었는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집단이 상대편을 무참하게 박살내고 정권을 장악하길 소망한다. 이것이 소위 진영 논리의 본질이며, 80년대 소위 민주화 운동 당시의 정치 역시 이러한 진영 논리와 무관할 수 없었다.
단지 계엄령 해체와 야당 정치인 석방이라는 자유주의적 구호를 부르짖었다고 해서, 다수가 군집하여 돌을 던지며 힘을 과시해 보이는 행동을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는없다. 실제로 그 당시 광주 시민들이 연호했던 정치인 김대중의 정치 철학과 경제적 시각은 이전의 박정희 정권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의 원리를 더 불신했으면 했지 하나도 더 중시하지 않았으며, 전형적인 집단주의적 사회주의 논리를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5·18 사건을 한국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발전시킨 사건으로 보지 않으며 '민주화 운동’과 같은 타이틀은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조롱하거나 음해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집단주의의 표상으로서 원시적 민주주의의 본질에는 합치될 지도 모르겠으나 선거와 의회라는 정치’경쟁’의 틀 속에서 설득과 타협을 추구해 나가야 할 자유민주주의라는 절차적 원칙이 5·18을 통해 발전했다고 보는 한국 사회 주류(main stream)의 생각에, 내 양심과 지성에 근거하여 온전히 동의하기 힘들다.
내 시각으로는, 근대 이래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경쟁과 선택)가 정치 논리(다수의 힘)를 압도할 정도로 성숙하였는가에 절대적으로 좌우될 뿐이다. 애당초 민주주의는 하자 말자의 차원이 아니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인 것이며, 진정한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의 성숙은 그 사회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사회 구성원 '개인’들의 자유를 더 많이 확보하는 방향으로 갈 때만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자유기업원 <시민논객> 기고 해당 기사 링크: https://www.cfe.org/20200629_22878
등록: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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