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식단, 의학과 역사 이야기
- Baeminteacher
-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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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4월 26일
지중해 식단은 완벽할까?
지중해 식단은 단순한 식사 패턴을 넘어 수천 년 동안 자연의 풍요와 인간의 창의력, 의학적 통찰이 어우러져 발전해 온 복합적인 문화 현상이다. 이 식단은 고대 지중해 연안의 사회에서 시작되어, 초기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빵, 올리브유, 와인을 중심으로 균형 잡힌 식문화를 형성한 데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에는 콩류와 제철 채소가 함께 섭취되며, 그 지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올리브, 포도, 밀 등이 주된 재료로 사용되었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에는 식생활에 육류와 지방이 일부 도입되었고, 9세기에 이슬람 제국에 의한 정복이 이루어지면서 건파스타, 쌀, 다양한 향신료가 추가되어 식단의 맛과 다양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신대륙의 발견 이후에는 감자, 토마토, 고추 등 새로운 식재료가 유입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중해 식단이 완성되었으며, 이와 같이 역사적 사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식문화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최근까지 학계에서는 지중해 식단이 실제로 만성 질환 예방에 기여하는지, 혹은 그 효과가 과대평가되었는지에 대해 활발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일부 코호트 연구(어떠한 요인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여 질병의 요인 및 발생 관계를 조사하는 연구법)와 무작위 대조시험에서는 이 식단이 심혈관 질환, 당뇨병, 대사 증후군 등 여러 만성 질환의 발생률을 낮추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고하였으나, 연구 설계상의 한계와 식단의 정의 문제로 인해 결과 해석에 신중함이 요구된다는 비판적인 견해도 동시에 존재한다.
가령, 안셀 키스의 ‘7개국 연구’와 같은 초기 연구들은 전통적인 지중해 식습관을 따르는 인구에서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낮음을 제시하였으나, 이후 진행된 무작위 통제 연구에서는 그 건강 증진 효과의 정도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연구들도 다수 나오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중해 식단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올리브유, 신선한 채소, 통곡물, 견과류 등—은 각각 건강에 유익한 성분들을 다량 함유하지만, 전체 식단으로서 상호 작용할 때 나타날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최근 연구들은 각 성분의 분자생물학적 메커니즘과 유전자–식이 상호작용에 주목하며 더욱 정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들은 유네스코가 지중해 식단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과는 별개로, 객관적인 검증과 비판에 열려 있는 학문적인 공간에서 지중해 식단이 조명되어 온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중해 식단은 단순한 음식 섭취 방식을 넘어 공동체, 전통, 자연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 생활 방식의 표현으로서 역사적 가치는 크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오랜 세월 동안 교류, 이주, 융합을 통해 공유해온 식문화는 고대 무역로와 정복, 문화 외교의 산 증거로 남아 있으며, 이러한 문화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건강과 지역 정체성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가지는 셈이다.
이는 현재의 우리들의 식생활을 위협하는 환경 –가령 글로벌화와 가공식품의 보편화로 전통적인 식습관이 점차 쇠퇴하는 실정–을 고려해 볼 때 더욱 의미가 크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서구권 국가에선 자국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한 현지화된 접근과 올바른 식습관 교육,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품 시스템을 통해 지중해 식단을 적절하게 소화, 응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해가고 있다.
일례로 최근 연구에선 지중해 식단의 건강 효과에 작용하는 분자적 기전과 유전자-식단 상호작용을 규명함으로써 보다 정밀한 맞춤형 식이요법 개발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는 공중보건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지중해 식단은 고대의 단순한 식생활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역사적 변화를 겪으며 세계적 문화유산의 의미와 함께, 의학적으로 건강 증진 효과를 투명하고 폭넓게 검증받는 절차를 거치면서 문화와 음식과 건강이 어우러지는 하나의 독자적인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성공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도 앞으로 (지중해 식단 못지않은 풍부한 식품 문화유산을 가진) 한국 사회가 건강과 전통,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 참조할 만한 좋은 예일 것이다.

배민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조교수
연세대 인문사회의학 협동과정에서 의학사 및 의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세기 영국사와 의학사를 주 분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 논문으로 「Locating hygienic medicine within the intellectual history of hygiene (2022), 「A Victorian nature cure philosophy as a reconciliation of Romantic Naturalism and laboratory medicine」(2025) 등이 있다.
출처 : 교수신문
승인: 2025.04.24.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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