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상감염·확진자 등의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공포
현재 코로나 방역은 합리적 근거없는 비이성적 방식
최근에 나온 역사책 중에 ‘로마의 운명’이란 책이 있다. 원저는 2017년에 출간된 카일 하퍼(Kyle Harper)의 책이다. 로마 시대는 흔히 왕정-공화정-제정으로 이어지는 세 시기로 시대 구분을 하는데, 제정은 로마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와 이후 급속히 쇠락하는 시기가 연이어 지는 시기이다. 제정 전반기에 해당하는 소위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시대에 5명의 훌륭한 황제는 그 시대 번영을 이끈 주역으로 일반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제정 후반기에는 군인 황제들이 이어지면서 정치가 혼란에 빠지고 이를 회복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종국에 가서는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카일 하퍼는 이 책에서 제정 시대 후반부의 로마 제국의 쇠퇴를 자연환경사 및 의학사의 관점에서 접근해 이야기한다. 그에 의하면 로마 제정시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당시 창궐했던 역병인 안토니누스 페스트 (165 – 180년)는 로마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는, 하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회복 탄력성’ 수준을 넘어서는 타격을 로마에 입혔다. 이후 로마는 쇠락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의 파급력을 중차대하게 보는 사람들은 마치 코로나를 그러한 로마 제국의 안토니누스 페스트나 중세 흑사병, 근대의 콜레라와 결핵 등과 동급으로 여기는 듯하다.
강도 높은 코로나 방역, 개인 자유 침해 소지 높아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코로나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면서 점점 더 답답한 마음이 들게 된다.
심지어 며칠 전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강도 높은 코로나 방역 대책을 천명했다. 결국 코로나 백신 의무화의 방향으로 미국이 가고 있는 것 같아 이를 보는 마음이 한없이 씁쓸하다.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백신 정책에 미국을 참고로 삼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어 백신 의무화의 길에 힘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지식인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야 이견 (different opinions)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구글, 페이스북, 한국의 다음, 네이버 등 인터넷 시장을 주도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사회적으로 친 진보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쪽이 상대적으로 진보에 가깝다. 당연히 국가가 방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쪽이다.
이런 판국에 코로나 관련해서 백신 의무화 반대 등을 주장하며 이견을 제시해 봐야 광야의 외침에 불과하다. 심하면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서처럼 아예 차단을 당하기도 한다.
각국의 정부 그리고 각국의 시장을 독점한 기업 집단들은 전세계적으로 지난해 이래로 코로나를 명분으로 사람들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가는데 협조해 온 셈이다. 물론 이는 그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정서, 국가 간의 경쟁, 정치적 여야의 이해관계 등의 원인이 맞물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필자의 우려 섞인 시각에 반대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를 조심하자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나에게 따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흐름이 보여주듯, 이제 코로나를 조심하자는 주장은 단순히 조심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선을 넘고 있다.
백신의 안정성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투여하지 않으면 죽어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권장하는 것이라며 밀고 나갈 것이다.
코로나는 과연 치명적인 전염병인가
코로나 백신 의무화 등 현재 모든 문제의 근본에는 하나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 있다. “코로나가 과연 (전국민 백신을 의무화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인 전염병인가?” 라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다.
필자 역시 코로나를 조심해야 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처럼 강도 높은 방역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는 점이다.
가령 독감도 조심해야 하지만 독감 백신을 국가적으로 의무화하진 않는다. 독감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훨씬 강도 높은 방역 정책을 코로나에 대해 쓰는 것에 대한 결정적인 근거는 과연 있는가?
사실 독감은 코로나와의 비교에서 하나의 예로 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질병을 사회적으로 다 없앨 수 없다. 만성병들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사실 만성병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회 환경과 밀접히 관련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가령 자동차 배기 가스는 도시 대기 오염의 주범이지만 한국 사회는 결코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힘도, 지혜도 없다.
뭐 그렇다고 단기간에 사람들이 죽는게 아니니 대중의 무관심 속에 (만성병과 사회 환경 간의 관련성) 문제는 방치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이른 나이에 각종 암과 혈관 질환에 노출되면서도 무심하게 살아간다.
즉 이 경우에는 건강의 유지가 개인의 몫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염병들은 위의 만성 질환과는 달리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전염병 퇴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즉, 이 주장 역시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것이지, 맞는 말이라고 결코 단정할 수 없다. 그 전염병의 치명률이 높은지 낮은지에 따라서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감기나 독감처럼 치명률이 낮은 전염병은 사회 전체가 나서서 방역 정책을 쓰지는 않는다.
사실 지금 와서 코로나와 관련한 방역 정책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감기와 독감을 이제껏 방치해 두고 우리가 살아왔는지 좀 신기할 정도이다.
코로나의 치명률은 정확하게 통계 내기가 힘들다. 소위 무증상 감염이 많이 때문이다. 그 소위 무증상 감염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통계 내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사실 무증상 감염이란 개념도 현재 혼동을 주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 개념이다. 처음에는 열도 없고 본인은 못 느끼는데 폐가 망가지는 등, 거의 암환자가 자신이 모르게 종양 조직을 키운 것 같은 어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코로나는 암처럼 본인이 몰라도 몸 안의 장기들이 손상 파괴되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 언론에서 무증상 감염이라는 단어는 아무런 감염 증상 (발열, 발적, 부종, 통증 등)이 없는데도 코로나 검사를 해봤더니 양성, 즉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는 경우 이를 무증상 감염이라고 말해온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호도할 수 있는 용어 사용이다. 작년 코로나 확산 초기에 극히 일부의 사례에서 정말로 무증상 감염 (암환자처럼 본인이 증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몸 안의 장기가 파괴되는 현상이 감염의 형태로 나타남)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문에서 전하는 소식이나 일상에서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그게 아니었다. 열도 없어서 아무 이상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받았더니 코로나 양성으로 나왔을 경우 이를 무증상 감염이라고 대부분 말하는 것이었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단지 몸속에 들어와서 존재한다고 해서 이를 심각한 ‘감염(infection)’ 상황이라 할 수는 없다. 그 세균이 “어느 정도의 병독성을 가지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하다못해 염증(inflammation)조차도 마찬가지다. 내 입 안에 치주염(잇몸 염증)을 일으키는 세균이 있다고 치주염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얼굴이나 신체에 감염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 증상이 이미 감염의 특징적인 양상을 보임으로써 중요해지는 것이지, 단지 세균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로 감염 여부를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무증상 코로나 양성은 ‘정상’… 확진자 수 통계에 넣지 말아야
코로나는 전염성이 강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병독성에 있어서 독감과 큰 차이가 없다. 단순히 말해서, 코로나 검사 결과 양성인데 나는 아무 증상이 없다면 사실상 나는 그냥 아무 문제없는 정상인 것이다. 실제도 올해 4월부터 중국에서는 무증상인데 코로나 양성의 경우 확진자 수에 넣지 않고 있다. 사실은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합리적인 역학 및 통계 조치일 수 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해서, 코로나 양성이 나왔어도 아무런 증상이 없다면 무증상 보균자일 뿐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환자도 아니므로 확진자라고 말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무증상 보균이 아닌 무증상 감염이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쓰여져 왔다.
보균과 감염은 어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은 환자가 감염이 되어서 턱 아래가 퉁퉁 부어 찾아오면 나름 치과 치료의 관점에서는 심각한 상황이다. 급성 감염은 위중한 상황임에 틀림 없다. 이러한 감염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를 인식하지 못하는 언론에서는 코로나와 관련해서 감염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써왔다.
만약 내 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감기처럼 급성 감염 증세가 기껏해야 발열 정도에 불과한데.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다고? 전파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또 무슨 문제인가? 그 전파 받은 사람이 면역력이 정상이라면 아무 증상 없이 보균자로 며칠 지낼 뿐이다.
확진자나 무증상 감염자라는 표현보다 무증상 보균자라는 단어가 적절할 것이며, 내가 만약 보균자일때 내가 위험한지 여부는 이 세균 혹은 바이러스의 병독성에 전적으로 좌우된다. 병독성은 통계적으로는 치명률로 나타난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치명률 통계도 정확히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보균자들이 별 증상 없이 잘 이겨낸다. 매독처럼 잠복해 있다가 목숨을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높은 자가완치율이 보여주듯, 그저 감기나 독감 바이러스들처럼 몸에 왔다가 일정 기간 머물다 나가는 것이다.
물론 해마다 기저 질환이 있고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이나 노인들의 경우는 감기나 독감, 폐렴 등으로 많이 돌아가신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이분들을 위해 전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가게문과 학교문을 닫게 하진 않았다. 애당초 개인의 면역력 차이를 무시하고 전국민을 온실의 화초로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정말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코로나에 대해서는 이러한 조치를 취해왔는가?
여기에 대해 그 누구도 치명률, 병독성, 코로나 감염의 메커니즘을 근거로 그와 대립되는 의견을 가진 입장을 설득할 만한 주장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학문적으로는 논쟁 중이며, 단지 정치적으로 헌법의 생명권을 들먹이며, 어쨌건 간에 코로나를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국민 전체를 두려움의 도가니로 계속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비이성에는 답이 없다.
스카이데일리 [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칼럼 기고 글 기사입력 2021-09-14 09:17:15 해당 기사 링크 (온라인):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40702 해당 기사 (지면, 9월 14일): https://www.skyedaily.com/data/skyn_pdf/2021/20210914/web/viewer2.html?file=20210914-3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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