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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보장 받을 권리






Changwon, Gyeongnam, Winter 2022


자유주의로 제어되지 않는 민주주의란 곧 전체주의

개인의 선호·양심 등 국가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어



사회 속 개인을 바라보는, 특히 사회와 개인 간의 충돌을 정치적으로 적절히 해소하기 위한, 대립되는 두 입장이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삼으며 개인주의를 강화시키는 반면,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와 대립되는 측면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자유주의보다 사회주의와 더 잘 어울리는 측면을 가진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 사회에서도 현재 어떤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원리를 강조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개인주의의 원리에는 동의하더라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적 원리를 통해 개인주의가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개인주의에 대해 아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한국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령 세상에는 감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구마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어떤 집단에서는 절대 다수의 구성원들이 감자를 더 좋아하고 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의 법이 ‘감자와 고구마 중에 더 맛있는 것은 감자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그 나라 사람들은 고구마를 맛있다고 말하면 처벌받는다고 가정해보자.당연히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나라의 법은 개인주의를 부정하는 법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감자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당당하게 외쳤다. '감자와 고구마 중에 더 맛있는 것은 고구마다'라고 어느 날 주장한 것이다. 경찰은 그를 잡으러 출동했지만 그는 도피를 하여 잡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당황스러워 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거냐고 충격에 휩싸인 것이었다.

이제 그 고구마 청년은 감자 나라 사람들에게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횃불 같은 존재가 되었다. 수배 중이었지만 그는 정치적 도피를 이어나가며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반정부 매체에 서신을 보내어 감자와 고구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은 고구마 청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고구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도 결성하였다. 그는 이따금씩 광장에 모인 자신의 지지자들 앞에 나타나 자신의 생각을 강연하고 사라지곤 했다.

감자 나라의 사람들은 웅성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형편 없었던 고구마의 판매량이 소폭이긴 하지만 증가하는 현상도 관찰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당황하여 고구마 청년이 일으킨 이 혼란한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의회에 모여 토론을 하였다.

감자 나라의 의원들은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비록 감자가 고구마보다 더 맛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긴 했지만, 그건 그 나라 사람들 절대 다수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생각을 가진 감자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가진 감자 나라 국민들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의회에서는 결국 고구마에 대해 세금을 100% 인상하기로 결정하였다. 고구마를 사람들이 더 많이 찾게 되면 감자 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해치고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불필요하게 고조시킬 수 있다는 명분을 들어 세금 인상안을 제정했고 의회 표결로 절대 다수의 의원들의 찬성 속에 세금 인상 법안이 통과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식료품 가게의 고구마 가격은 이전보다 크게 오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감자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어차피 그들 대다수는 고구마를 사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구마 판매량은 다시 급감했고 수배 중이던 고구마 청년은 결국 붙잡혀 법정에 서게 되었다. 고구마 청년을 따르던 지지자들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자 자신들의 소신을 버리고 고구마 청년을 떠나갔다. 그리고 사회는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금 안정을 찾게 되었다.

재판에서 검찰은 고구마 청년이 감자가 더 맛있다고 여기는 감자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하였으며 감자를 사랑하여 자신의 인생을 감자에 바친 많은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그의 죄목을 열거하였다.

고구마 청년은 그것은 자신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항변하였다. 단지 자신은 고구마가 감자보다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험 인물로 몰아 세우고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는 도대체 누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고민한 결과 감자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감자가 더 맛있다는 믿음에 세뇌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행동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론했다.

하지만 재판정의 배심원을 포함해 판사들도 모두 고구마 청년의 정신이 어딘가 이상하거나 아니면 감자 나라의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 의도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 판단했고, 결국 고구마 청년은 벌금과 사회 봉사, 그리고 계도를 위한 교육을 받고서야 일상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그 일상이란 감자가 고구마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갖고 생활하는 일상이었다.

감자 나라에 관한 이 기괴한 이야기는 매우 비현실적인 동화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실의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특징적인 현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소수가 가진 다른 생각에 대해 다수가 가지는 불편한 감정이다. 이는 결코 그 소수가 탁월한 지성을 가지고 더 정의로운 편에 서 있거나 다수가 무지하고 배타적인 집단이어서가 아니다.

다수를 이루는 사회 구성원들 각각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개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의 다수의 의지나 믿음은 그 자체로 소수의 개인들에게는 억압과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우리는 어떤 타인이 개인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이를 느끼고 반응할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의 이익과 권리가 침해 당하는 상황은 그렇게 사회악과 정의라는 단순한 구도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이익과 권리는 매우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억압 받거나 침해 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 이야기 속 감자 나라에서도 고구마 청년처럼 고구마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고구마에 대한 세금이 100%나 인상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구마를 먹고 싶었던 사람들은 감자 나라의 의회에서 통과시킨 이 법에 대해, 설령 그것이 자신의 나라 사람들 다수가 원하는 바대로 만들어진 법이라 해도, 동의하긴 힘들 것이다.

사실상 이 상황은 이들이 가진 선택의 자유가 시장에서 국가에 의해 침해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들이 고구마를 사게 되는 경우 부당하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므로 이는 이들의 재산권이 국가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즉 이들 소수의 행복과 이익은 감자 나라에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폐해를 끼친다는 명목으로 억압 받는 상황이다.

비현실적인 비유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사실상 개인의 재산뿐 아니라 개인들이 가진 선호, 양심과 종교적 신념 등이 얼마든지 다양한 명분으로 국가에 의해 위협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국가의 형태가 독재정치이든 민주정치이든 상관이 없다. 단지 독재자가 백성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는 일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민주국가에서 의회가 결정하고 정부가 행사하는 억압은 그보다 간접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욕망은 위선의 가면을 쓰고 드러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소수의 개인들이 그 희생양이 되기 쉽다. 즉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사회 다수의 생각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개인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의 관계는 이처럼 상호 충돌하는 지점을 가진다. 유럽에서 사적 재산권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가장 먼저 꽃 피었던 나라는 영국이며 이러한 정신을 경험론적 철학을 통해 이론화한 대표적인 사상가가 존 로크였다. 반면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장 자크 루소는 로크와 달리 개인의 소유권에 초점을 두기 보다 힘 없는 다수인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는 절대 권력에 맞서는 것에 더 주목하였으며, 표현의 자유에 초점을 두기보다 다수 민중의 신분적 해방에 더 주목하였다.

루소에게는 전체 인민의 다수결로 표현되는 ‘일반의지’야 말로 합당한 권력행사의 유일하고 진실된 근거였다. 하지만그의 민주주의 사상은 사회적 다수의 의지를 실현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었지만, 그 관념 속에 이들 다수의 의지와 상반되는 소수의 개인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이들 소수의 개인들은 이제 공공의 의지를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되거나 자칫하면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일은 근대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평가 받고 있는 프랑스 시민혁명 기간 동안에, 특히 후반부의 공포 정치 시기에 분명하게 나타났다.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급진적인 정치집단은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사상가, 학자, 종교인들의 의견이 표현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 했고 물리적으로 이들을 제거하기도 했다. 감자와 고구마의 선호도 차이 만큼이나 사소한 입장의 차이, 견해 차이로 상대를 길로틴, 즉 단두대에서 처형시키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사회적 평등의 실현, 가난한 민중의 삶의 해방 등의 정치적 목적은 단지 대중의 욕망을 표출하기 위한 명분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음을프랑스 혁명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증언하였던 셈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역사적 진실, 즉 자유주의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공포정치나 전체주의로 흐르게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Changwon, Gyeongnam, Winter 2022



스카이데일리 [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칼럼 기고 글


기사입력 2022-02-16 10:05:47


해당 기사 링크 (온라인):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51717


해당 기사 (지면, 2022년 2월 16일): https://www.skyedaily.com/data/skyn_pdf/2022/20220216/web/viewer2.html?file=20220216-31.pdf

제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