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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Baeminteacher

일본의 역사와 사회 (2)




어느 날 집에서 (in Seoul)


내가 말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일본 카마쿠라에 있는 어느 절을 방문했을 때 그 절 안에 있는 조그만 찻집에서 마셨던 말차의 기억에 연유한다.


마치 내가 예전에 양고기를 한 때 좋아했던 것도 몽골의 초원에서 먹었던 식사의 기억 때문이었던 것처럼. 치대 다니던 시절 세브란스 병원의 교직원, 학생 방문단 팀에 합류하여 몽골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곳의 몽골인이 양을 직접 죽이고 털 가죽을 벗겨 내고 뜨거운 돌로 양고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육식을 먹지 말아야할 이유가 되었을 그 광경이었지만, 점심 때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에 놓여진 테이블, 그 위에 깔린 흰 테이블 보, 그리고 그 위에 정갈하게 차려진 그릇과 음식으로 이루어진 성찬의 모습이 대신 내 기억을 차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 위로 모여든 독수리들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한 낮의 푸른 하늘 빛이 기억 속에서 오래 남았다.


내가 말차를 좋아하게 되고, 내게 말차의 기억을 선물한 카마쿠라라는 도시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절과 신사들, 그리고 그로 인해 그 도시 어디에나 있는 녹음의 존재 때문이었다. 카마쿠라는 숲의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해변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의 첫 문단에는주인공이 '선생님'을 만난 곳이 카마쿠라의 바닷가였다고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사쿠사 절 근처의 한 찻집에서 (in Tokyo)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역사적으로 중세 도시의 모습 그 자체가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같다. 한국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종종 고려시대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다면 나중에 일본을 가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곤 한다. 불교 사회였던 고려시대의 도시 풍경은 아마도 일본의 카마쿠라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한다. 실제로 고려시대 무신 정권 시기는 일본 역사에서 카마쿠라 막부 시절과 겹친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봉건제는 한국과 중국의 중앙 집권 통치 방식과 많은 대조를 보인다. 유교 정치체제의 중요한 부분인 과거제도, 그리고 이와 직결된 신사층과 양반층이 각각 지배했던 중국과 한국의 향촌 사회 지배 방식과 다르게, 일본은 각지의 다이묘가 독자적으로 지역 사회를 다스리는 상황이었다. 지방 고유의 문화가 역사적으로 잘 이어져 온 까닭이 그러하고, 그래서 중세시대의 사찰들이 에도시대와 근현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카마쿠라를 비롯한 일본 중소도시들의 모습이다.


조선은 교조적인 성리학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사상의 감옥에 가까왔던 통제된 폐쇄 사회였다. 그리고 그속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정부의 관리들로 인한 부패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견제 장치가 없었다. 명분 상으로 조선의 복지 정책이라고 해야할 환곡 제도가 오히려 조선 후기에 백성들에 대한 가장 악랄한 착취와 수탈 체제로 변모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러한 관 우위의 사회에서 시장과 상인들이 자본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토지 중심의 사회에서 자본 중심의 사회로 넘어가는 흐름은 나타날 수 없었고, 부농들은 양반 신분을 사는 신분 세탁에 급급할 뿐이었다. 국가 권력과 결탁한 토지 귀족 신분인 양반들로 인해 토지는 자본이 아닌 신분적 구속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히비야 공원 근처의 한 말차 까페에서 (in Tokyo)


18, 19세기 영국과 동시대의 조선의 모습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작은 정부와 큰 시장, 큰 정부와 작은 시장으로 한 마디로 대비된다. 전자는 18세기에 거세게 되살아난 인클로저 운동의 영향으로 산업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튜더 시대때부터 시작된 인클로저 운동의 본질은 결국 토지의 자본화, 즉 토지가 사유재산으로서 활용되는 것이었다. 로크의 자유주의도 결국 이러한 영국적 사회 경제 변화를 반영하는 사상에 다름 아니었고, 이러한 법적인 사유재산 제도의 발전은 시장에서 생산과 유통 방식의 혁신을 초래하였다.


역사적으로 일본 사회의 특징은 이러한 대조적인 영국과 조선 사이의 어디 즘엔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과 비교하면, 교조적인 사상 통제의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준 불교사회적 전통, 무엇보다 오사카 쌀 시장 (조선은 이미 에도시대에 일본의 가장 중요한 쌀 수입 대상 국가였다) 등과 같은 오랜 역사를 가진 내수 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은 19세기에 와서 조선 정부의 한 해 총 세수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규모를 가지게 된다


일본이 한국의 역사와 가장 차이 나는 부분이 바로, 조선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큰 시장을 통해 잘 유지되고 보존된 사유재산의 관념이었다. 카마쿠라를 비롯해 일본의 지방 도시들 곳곳에 남아 있는 오래된 절들은 일본 사회의 이러한 사회경제적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의 보존은 사유재산이 발달한 사회에서 더욱 잘 이루어질 수 있다. 20세기 소련과 중국에서 전통이 보존될 수 없었던 바로 그 이유가 조선이라는 시대를 거친 한국에 중세적 전통이랄게 남아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말차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결국 일본, 영국, 한국 역사 비교를 하고 말았다. 직업을 못 속인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긴자 거리에 있는 한 찻집에서 (in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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