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연구활동 (2026년 봄)
- Baeminteacher

- 6월 21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6일
1. 서평 개제: 2026.03.12
저널: Journal of the History of Medicine and Allied Sciences (해외 저널)
Sander L. Gilman, Doc or Quack: Science and Anti-Science in Modern Medicine (Reaktion, 2025)

2. 연구원 (지중해 지역원) 관련 논문 개제: 2026.05.31
저널: 지중해지역연구 (국내 저널)
논문: 19세기 지중해 의료 여행의 성쇠와 의학이론의 관계
내가 소속된 연구원에서 계간으로 발행하는 저널에 처음으로 논문을 개제하였다.
이슬람 의학사에 대해서는 2024년 지중해 연구원에서 발간한 책의 소챕터를 맡아 contribution 하기는 했지만, 국내에선 비이슬람 주제의 지중해 관련 의학사 연구가 드문 편이다.
영국사학회 전국학술대회 참가

일시: 2026.05.30
장소: 부산대학교
이번 학술대회는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의 공동 수상자 중 한 명인 Joel Mokyr 의 영국 경제사 연구를 주제로 하였다.
Mokyr 의 전공분야가 economic history 이기에 그날 학술대회에는 경제학자 (이남형 방송통신대 교수)도 참석하여 역사학자들과 사뭇 다른 시각을 선보였는데, 사실 나로서는 그의 시각이 다른 역사학 교수들의 시각보다는 내 생각에 훨씬 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학술대회가 끝나고 회식 장소로 이동하면서 그 경제학 교수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걸었다.
사실 그도 한국의 경제학계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history of economic thought 분야) 연구는 극히 소수만이 하고 있을 뿐이어서 역사학자와 경제학자 양쪽 모두에서 자신은 이방인같은 존재라고 했다. 왠지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나는 경제학적인 기본 바탕이 없이 제대로 깊이 있게 인간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기억난다.
홍대 역사교육과를 다니던 때였다. 혼자서 맨큐의 경제학 교과서를 두번 정독을 하고서야 인문사회학에 대한 기본 시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Economics는 내 사고와 지식의 구조가 biomedicine에서 Humanities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치대를 다니던 시절에도 인문 사회 분야 책을 읽었지만,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인간의 이해는 그저 인간은 이래야 된다 혹은 저래야 된다는 공자님 말씀 수준의 이해에 머물러 있었다.
즉, 연세대를 다니던 시절 읽었던 많은 사회과학 서적들 (해겔의 변증법이나 맑스의 자본론 등)은 그 맨큐의 책에 비하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당위론적인 태도에 고착되어 있었다.
당위론적인 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한 당위론적인 주장에 고착되어 보다 깊은 인간과 사회의 본질과 작동 원리에 대해 모르고 당위론을 떠드는 것과 그러한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 당위론의 시각을 접목해나가는 것은 전연 다르다.
'주장'은 '검증'에 우선할 수없다.
모든 공부는 기본 바탕이 중요한 법이다.
공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어려운 공부, 즉 본질에 대한 이해와 쉬운 공부, 즉 피상적인 지식 습득이 있으니, 어려운 공부를 한 후에라야 인간은 비로소 생각할 줄 아는 존재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학문의 권장'에서 무릇 공부를 하는 이유는 '속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저 어림 짐작으로 들으면 무척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사실은 그러지 않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어떠한 세계관에 의해 속고 있는지 알길이 없이 그저 세뇌 당해 이 세상에서 장기 말의 존재로 살아가게 될 뿐이다.
특히 달콤한 입에 발린 약속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이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케익을 갖고 싶고 동시에 먹고 싶은 비이성적인 인간의 공짜 근성을 저격하는 이 기만적인 세계관은 20세기 이래 인류가 계속 속고 있는 거대한 사이비 과학 이론이다.
기본적인 경제학 공부를 통해서든 아니면 사업 경험을 통해서든, 그 허상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면, 개인이든 사회든 자기 기만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환원론적인 대학교의 지성 체계가 구축한 (어떤 의미에서 대학은 the republic of reductionism이라 할 만하다), 20세기 이래로 거대한 사회주의의 성채와도 같은 사상의 프레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세계관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간다. 30대 초반까지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은 그 존재 자체의 cost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는 지혜는 망각되어 버린 채, 서구 사회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스스로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미국도, 유럽도 사회적인 내홍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며 사는 인간은 결코 자신이 속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모든 사기꾼들은 사기 당하는 사람이 가진, 속고 싶은 (거짓말에서 깨고 싶지 않은, 진실을 보고 싶지 않은) 욕망을 이용해서 사기를 칠 뿐이다.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autonomy 를 행사하고 산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 뜻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고의 바탕이 없는 (혹은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개념과 지식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는 결코 인간은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이유로 현재의 이러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 결코 알지 못한 채 속아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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