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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사로서 바라본 동아시아사와 한일교류




최근 들어 다시금 그 좌편향 사관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서 자연히 역사교사들의 한일관계에 대한 시각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아마도 이들의 역사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도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한국의 많은 역사교사들은 한일관계를 평화와 미래지향의 동반자적 관계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중엔 한중일의 동아시아사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이들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동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의 존재 역시 그러한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한국의 역사교사들은 일본에 대한 반일 프레임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그들이 얘기하는 소통은 일본의 좌익 지식인 및 교육자들과의 소통, 혹은 최소한 일본의 우익을 제외한 이들과의 소통이지 (우파 성향의 내각이 이끄는) 일본이라는 사회의 일반적인 시민 집단과의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작년 11월 초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를 제목으로 한 포럼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강남역 근처의 큰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해외 참석자들은 호텔급 숙소와 함께 고급 식사를 끼니마다 제공받았었다. 한국측 주최기관으로는 좌파 성향의 교육감이 이끄는 어느 시 교육청을 필두로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성향이 비슷한 단체들로 구성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참가자들을 보면 대부분 중국은 대학 교수들, 일본은 시민 단체 대표들이 참가했었다. 중국은 잘 모르겠으나, 일본의 그 단체들은 대부분 일본 좌익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었다. 컨퍼런스에서 일본측 연자들의 발제 내용이나 토론 내용이 이를 잘 보여주었는데, 한참 토론을 듣고 있다 보면 나중엔 이 사람들이 한중일 평화포럼에 와있는건지 아베 반대 정치 집회에 나와 있는건지 분간이 가기 힘든 지경이었다. 물론 그러한 일본측 참가자들의 성토를 한국 주최측 참가자들은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오히려 중국측 대학교수들은 그러한 일본인 시민운동가들의 주장 중 강력한 비핵화 논조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며, 이상주의적인 측면보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아이러니한 풍경을 선사했다. 한마디로 그 포럼은 기괴한 이해관계의 일치점이 만나서 연출된 동북아 사회주의의 경연장을 보는 듯했다.



물론 한국의 역사교육자들이 일본의 좌익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의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강성한 민족주의에 화답할 수 있는 집단은 일본에서는 단연 (한국에서 흔히 양심세력이라고 칭하는) 좌파 지식인들일 것이다. 위안부 기사로 법적 논쟁까지 초래한 아사히를 비롯해 마이니치, 도쿄신문 같은 일본의 기성 언론 기관들 중엔 노골적으로 친북, 친중 성향을 보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전혀 놀랍지 않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왜 아직 ‘우파 언론으로 매도’당해야 하는지 못내 아쉬워하는 듯해 보이는 한국의 조중동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언론은 우파보다는 좌파적 시각에 더 호의적이다. 중립적인 국영방송으로 유명한 영국의 BBC도 실재 리포터들의 취재 기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분히 좌파적 시각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선상에서 보면, 한국인들의 사회를 바라보는 좌파적 착시 현상(특히 일본에 대한 인식)이 여느 나라에서 그렇듯 지금껏 언론에 의해 확대 강화되어왔다는 점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집단주의화, 좌경화된 한국사회의 거울과도 같은 한국 유명 포털에 올라오는, 일본 관련 기사들 상당수 역시 일본 좌익의 시각이나 주장을 반영한 신문의 기사들이 마치 일본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러한 것처럼 보도되어왔다.


낭만시절을 구가했던 다이쇼 시대 일본의 모습. 출처= 유튜브 '1913-1915: Views of Tokyo, Japan'

그렇다면 보통의 일본인들은 한일 교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다지 관심이 없다가 정답일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교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호의적으로 대답하겠지만, 그것은 객관적 지식이나 사실 관계의 이해에 바탕을 둔 관심이 아닌, 낭만적 시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령 1920년대 다이쇼 시기의 자유민주주의가 가져다 준 사회적 부흥과 취향의 자유 속에 내지인과 조선인이 차별의 벽을 조금씩 넘어가던 좋았던 그 추억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 이전의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그 이후의 대동아 총력전의 엄격하고 어두운 시기는 거세되고, 한국식으로 비유하면 피천득의 ‘인연’ 속 낭만적 정서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6.25 이후 시대에 대해서는, 두 나라 모두 미국에 의해 재편된 동북아 정치 틀 속에서 공조를 보이는 시늉만 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로 기업 혹은 개인간 경제적 교류를 했을 뿐이지, 사회적으로 보통의 일본인이 한국인에 대해 진지하게 벽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의 특징이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나 등) 사색할 기회는 없었다. 이는 마치 한국인에게 베트남 사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나 등을 질문했을 때 한국인의 반응과 유사할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유교사회의 배타적 폐쇄성 및 냉전시대 남북의 비극적 갈등 등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에 매우 친밀성을 느낄 수 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사실 (베트남 아내 혹은 사업과 관련된 경우가 아닌 이상) 별로 관심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민족주의 과거를 비난하고 있다. 사진=SBS뉴스 캡처

당연하게도, 현재 일본인은 한국인처럼 그렇게 민족주의적이지 않다.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사회적으로 민족주의적 역사의식을 요구받는 경우는 드물다. 예전에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한 책을 내고 나서 누군가에게 ‘일본인과 한국인 중 누가 더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가’를 질문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인간은 전략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생존과 안전이 보장 받지 못하는 부패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감정적 지능을 발휘해 지지자나 조력자를 찾아나서는 집단주의적 전략이 더 성공적일 것이고, 경쟁의 룰이 정착된 예측 가능한 안정된 사회에서는 이성적 지능을 개발시켜 자기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높여나가는 개인주의적 전략을 쓰게 된다. 물론 보통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두가지 전략을 자신의 성향에 맞게 무의식적으로 취해 살아가게 되겠지만, 더 시장 친화적인 사회, 더 선진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개인주의적인 인간이 될 확률이 높다.


가령, 1930년대 일본 사회의 비현실적인 집단주의적 흐름도 그 사회적 내막을 살펴보면 일본의 귀족 정신을 계승한 사무라이 가문 출신 군부지도자들을 대체해 일본 농민 출신 장교들의 (집단주의적) 정치 성향이 경제공황 이후 일본 대중의 중우적 요구와 맞물려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이기도 했다. 반시장자본주의가 그 정신적 근간이었던 1920년대 독일의 치기어린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azi)도 패전후의 암울한 사회적 정서 속 집단주의 전략을 통해 성장했었고, 2016년의 대한민국의 ‘촛불혁명’ 역시 ‘헬조선’이라는 젊은이들의 구호 속에 숨은 자기파괴적 집단 정서 속에서 성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영훈 교수의 책 '반일종족주의'는 근래 한일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사진=SBS뉴스 캡처

이런 관점에서 현대 일본 사회에 민족주의나 민주화 같은 비실용적 집단주의 담론이 사회적으로 인기가 없는 것은 오히려 부러운 일이지, 한국의 역사교사들이 과거의 (주로 20세기) 기억을 다시 꺼내들며 역사의식 (주로 죄의식)이 부족하다며 계몽의 대상으로 삼을 일은 결코 아니다. 집단주의 사고를 쉽게 하는 한국인이 보통의 개인주의적 일본인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것은, 그저 일본 좌파 지식인과 만나서 함께 아베 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반일민족주의, 즉 자기중심적 독선을 이겨냄으로써 더 실현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가 시장 (market)과 자본(capital)의 진면목을 경험하고 보다 현실 좌표 속에서 자기 위치를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날이 와야만 가능할 것이기에 그렇다.











미디어워치 기고

해당 기사 링크: https://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4703

기고문의 원 제목은 '역사교사로서 바라본 동아시아사와 한일교류'이며, 해당 신문사에 의해 '과거·집단의 한국, 현재·개인의 일본...이대론 ‘소통불가’'로 제목 수정되어 개제됨.

등록: 2020.04.05 22:50:54

제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