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이해
- Baeminteacher

-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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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6월 29일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것과 내게는 동의어이다.
아버지는 1940년에 태어나셨으니 1950년대가 아버지에겐 가장 감수성 예민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은 1960-80년대까지의 군출신 대통령 시절의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와 일치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 시기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며 평생을 사셨다.
1945년-50년대의 한국 사회는 양키적인 자유주의 문화가 도래하고 내부의 지적 기반은 없어 그야말로 사상의 혼란 그자체였다.
반면 60-80년대는 반공, 그리고 근면, 자조, 협동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방향성이 분명하게 정립되었고 집단주의적 사회적 특성이 그러한 방향성과 결합하여 사회가 건전하고 건강해졌다. 그 결과 신뢰와 희망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갈 수 있었다.
나는 1973년에 태어났다. 80년대 말, 90년대초가 나에겐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대였는데, 김영삼 정부 이전의 건강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내가 강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큰 다행이었다.
실제로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나와 달리 80년대 사회의 기운을 제대로 느끼기엔 너무 어린 시절을 보내 한국 사회가 90년대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른지의 역사적 흐름의 감을 느끼지 못한다.
아버진 내가 대학을 들어간 1990년대 이래로 거의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퇴폐적이고 타락한 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시대의 반영과도 같은 그런 문화를 접하고 싶지 않아하신 것이다.
난 아버지와 두번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며 두번 크게 대들었다.
첫번째는 1990년 내가 고3때였고 두번째는 2001년 내가 공보의를 할 때였다.
첫번째 사건은 내가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던 것이 아버지와 논쟁을 불러왔고 난 아버지에게 따귀를 얻어맞고 분한 나머지 집을 뛰쳐나갔다. 1학기 기말고사 전후 였을 것이다. 며칠을 집 밖에 놀이터에서,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중재로 내 뜻을 접고 다시 집에 기어들어갔다. 참 한심한 아들이었다.
두번째는 제대로 아버지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나의 그것과 정면 충돌했다.
운동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합숙훈련을 하는 한국의 훈련방식과 비교해 미국의 자유로운 개인별 훈련의 우수성에 대해 떠들었다. 아버지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가치관에 대해 정면으로 공격을 한 셈이었고, 아버지는 이번에도 내가 한 대 얻어 맞으면 정신을 차리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셨던 것같다. 아버지의 손이 올라 가는 순간에 난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나도 흥분해서 그동안 쌓인 내 생각을 마구 쏟아내고는 이번에도 집을 나가버렸다. 참 되바라진 아들이었다.
물론 돌아가신 아버지의 국가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 사상에 지금도 동의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90년대부터 돌아가시던 2022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마음과 기분으로 지내셨을지 이해가 간다. 80년대 전두환-나카소네-레이건의 한국-일본-미국 체제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한국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가져왔다. 아버지는 전두환 대통령을 좋아하셨다. 정확히는 그 당시의 시스템을 지지하셨고 유지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셨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의 수립과 함께 아버지는 공직에서 물러나셨다.
연세대라는, 한국 사회의 liberalism의 상징과도 같은 곳에서 대학생 아들이 점차점차 좌파 사상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90년대에 아버지는 답답하셨을 것이다.
실제로 학교를 오래 다닌 바람에 90년대를 꼬박 대학생 신분으로 살게 된 나는 사회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 그 시대를 보냈다. 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에 과거와의 단절을 내세우며 한국 사회가 경제, 사회적으로 고장나기 시작했던 시기, 그리고 연이어 김대중 정부 시절 leftist turn을 본격화해나가 던 시기에 당시 나는 좌파사상에 물들어 사회의 흐름이 바뀌어 나가는 모습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위기의식도 가지지 못했다.
이른바 87년 체제는 그렇게 90년대 두 김씨에 의해 한국사회에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이 말하는 민주화된 사회였다.
민주화…
서양사를, 특히 영국사를 전공한 나는 민주화가 어떤 것인지 그 본질에 대해 이전부터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17,18세기 유럽에서 monarchism을 견제하고자 생겨난 영국과 네덜란드의 constitutionalism이 왜 democracy를 억압하려고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민주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또 위험할 수 있는 정치체제인지를 알게 된다.
진보에 대한 Naïve optimism으로 점철된 방향성 없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끝물에 해당하는 칸트는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에 철퇴를 내려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freedom은 reason, morality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치였다.
칸트에게 있어 자유의 기반이 되는 것은 결국 개인주의적 도덕 철학이었다. 즉 한 개인이 타인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biased 된 관점과 감정, 경향성으로부터도 스스로를 detach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행동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신의 사사로운 개인적 관점 (Individual perspective)를 초월하는 행동과 삶의 보편적 준칙 (principles)에 따라 살 수 있는 인간이라야 자유를 진정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칸트적 의미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은 군중 속의 '고독한' 개인임과 동시에, 타인을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잣대를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로 적용하는 '엄격한' 개인이다.
사실상 중세 시대 내내 신의 가르침에 따라 숙명적으로 살기만 하면 되었던 유럽인들이 주체적인 인간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19세기 유럽의 지식인과 철학자들은 생각했다. 이 힘든 개인의 자립의 역사를 20세기 한국인들은 너무나 쉽게, 그저 권리 위주로 편한 데로 여겨온 것이다.
영국사에서 Herbert Spencer로 대표되는 개인주의는 19세기 중반 이후 사상의 지형 속에 존 스튜어트 밀로 대표되는 '새로운 자유주의' (new liberalism)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고, 이후 모두가 알고 있듯 자유주의는 Fabian society와 같은 사회주의와 타협하면서 기존의 classical liberalism로 부터 완전히 멀어지게 된다. 결국 20세기에 와서 liberalism은 self-responsibility의 개념이 거세된, 권리 행사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에 치우침으로써 스스로 타락의 길을 걸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90년대 이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권리 만을 신성시해왔다.
한국의 교육, 특히 역사 교과서의 (군부 독재에 항거하여 해방된 민주화 사회를 이루어냈다는 서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현대사 부분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이에 대해 역사교사로 일하면서 나는 뼈저리게 깊이 그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 사회는 민주정의 형태를 띠는 전체주의 사회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경제적으로는 국가개입과 국유화가 너무나 일상화된 좌파 경제 체제가 정착해버려서 화폐 가치는 장기적인 신용을 잃은지 오래고 몇몇 대기업만 살아 남은 기업 생태계는 이제 완전히 붕괴되어 있다.
가령 요즘의 길거리나 지하철을 보면 정부 광고가 넘쳐난다. 제대로 된 기업이 하는 광고는 사라졌다.
서울올림픽, '국풍81'로 대표되는 (국가가 목표를 설정하고 국민들이 단합하는 것을 강조했던) 80년대 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촘촘하게 국가가 개인들의 일상과 몸을 컨트롤 하는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아무도 저항할 생각조차 않는다.
힘으로 억압하는 것이 아닌 의식과 사상을 세뇌하고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배에 저항하는 것은 너무 몸과 마음이 불편함을 동반하기 때문에 귀찮아서라도 저항할 생각을 못한다.
Aldous Huxley의 Brave New World는 2020년대의 한국 사회를 사실상 그대로 예언한 소설과도 같다.
자신들이 80년대에 죽창을 들고 아스팔트를 뜯어 화염병과 함께 투척하며 야만적으로 싸우면서도 자신들을 비민주적 억압에 맞선 민주화 투사라고 포장하던 지금의 60, 70대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묻고 싶다. 은퇴했으니 트로트 노래와 네프릭스에 빠져 남은 인생을 즐기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있는가.
지금의 40대 50대는 또 어떤가. 특히 40대들은 전교조로 대표되는 (지금의 50대가 주도했던) 90년대 좌파 감성의 세뇌 교육과 함게 성장한 세대이다. 60-80년대 한국 사회의 끝물이라도 경험한 나와 달리 아예 이전의 건전하고 건강했던 한국사회의 모습이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세대이다.
이들은 90년대 이래의 각종 리버럴 좌파 사상과 노조의 레토릭에 자신의 일생을 동화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특히 이들 중 많은 수는 지금 현재에도 한국 사회의 레거시 미디어의 마지막 남은 충성층으로서 기꺼이 민주당 프로파간다의 융단 폭격 속에서 행복회로를 돌리며 Brave New World의 시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social control의 대상이 되어 혹은 그 체제에 동조하여 좀비처럼 살아간다. 이들은 '힐링'과 '소확행' 등으로 상징되는 그들보다 젊은 층의 소비 문화에 적극 동조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본질은 '82년생 김지영'이 상징하는 (눈에 보이는) 전통 사회의 억압에는 격분하고 격조와 품위를 권위주의 소비문화로 이해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귀여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adult kid로 정신연령이 멈춰버린 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함께 한 한국 사회의 과거를 뒤돌아 보고 자신들이 이 사회에 끼친 해악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새마을 운동 시대의 사회적 이념을 체화하여 절약하고 성실하게 일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여기고 저항하고자 했던 나 자신을 한 없이 반성하는 나 자신에게 지금 2020년대의 한국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 슬프고 아프게 느껴진다.
많은 수의 한국인들은 나르시시즘에 빠져 진상 고객을 넘어 진상 인간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학교는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체육복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왜 자신들이 학교에 나와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한국의 교사들은, 특히 전교조 이래로 좌파 사상으로 '교실 민주화', '학교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전력이 있는 좌파 교사들은, 요즘 유행하는 '참교육'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들이 민주화 시킨 공간에서 자신의 후배 교사들이 어떠한 교직의 일상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하긴 그 후배 교사들 역시 교사의 '권위' 따위는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고 그저 '학생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유일한 교육철학인냥 행동한 그 대가가 바로 지금의 처참하게 무너진 교실 풍경이기도 하다.
더 이상 쓰면 마음이 더 우울해지기만 할 뿐이이서 이 정도로 펜을 내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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