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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적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의 역사교과서






* 아래는 <역사연구재단 설립 준비 및 제1차 기독교계 대안학교용 중등학교 근현대사 교재 개발을 위한 학술세미나>의 지정토론 1 에서 발표한 원고임.




한국의 근현대사 교육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볼 때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편술되어 왔다. 건국 후 지금까지 이러한 기본적 성격이 한 번도 변화된 적은 없었다. 즉 역사적 사건들을 민족적 명제를 전제로 해석함과 동시에 이와 연관된 반일, 반제국주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고양하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사회주의적 세계관이 촘촘히 베어 들어가 있어서 역사를 사회주의 특유의 방식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그 결과 한국사에 대한 시각은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닌 민족사회주의의 형태로 학생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가령 한국사에서 개인의 사적 재산권이 비로소 법적으로 확립된 일제하 조선민사령, 해방 직후 미군정청에 의한 일본인 귀속재산의 불하, 이후 군인정권시기 일본으로부터의 지원과 투자로부터 가능해진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무역은 한국의 자본주의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외부요인들이었다.


바로 이러한 외부요인들에 대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하다. 특히 한국 역사에서 그러한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유치하여 시장경제를 확대시킨 한국인 자본가들과 군인 관료들에 대한 민족사회주의자들의 시각은, 진즉에 청산되었어야 할 반민족 적폐 세력이자 미국과 일본 자본에 민중의 노동을 헐값에 팔아넘긴 착취 세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교육 전 분야가 마찬가지이지만 최근 30여 년간의 역사교육은 한국 현대사에서 소위 민주화라 명명되어 온 정치 사회적 흐름, 정확히는 위에서 언급한 민족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흐름을 정확히 투영했던 거울이자 그러한 흐름의 주된 동력이었다.


무엇보다 중등 역사교육에서 2010년대 초까지 존속했던 국정 교과서는 강한 민족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었다. 단지 국정 교과서 제도 자체는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재야 정치세력 그리고 학계의 다수 학자들에 의한 지속적인 비판의 명분일 뿐이었다. 이들은 지난 20세기 내내 당시 반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했던 집권 세력에 대항하여 자연스레 사회주의적 시각을 공유하였다. 또한 일본과의 외교 수립 이후로는 집권 세력을 친일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민족주의적 입장으로, 유신체제 이후로는 집권 세력을 독재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민주주의적 입장으로 규정하였다.


즉 한국 인문 사회학계의 보편적 정서는, 특히 한국사학계의 지배적 정서는 민족 사회주의적인 편향성을 자연스레 가졌다. 더군다나 20세기는 세계적으로도, 심지어 영미권 학계에서도 사회주의 경향이 지속적으로 강했다. 즉 최근 30여 년간의 국내 역사교육은 바로 지난 세기 형성되었던 학문의 자연스런 정치 지형이 시간이 지나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 속에서 검인정 교과서 제도가 본격화된 2010년대부터는 보다 분명한 민족 사회주의적 시각에 입각한 교육과정과 교과서 검정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교과서 상품들이 검정 교과서 시장을 채워왔다.

역사교사로서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마주 치는 모습 중 하나는 학생들이 교과서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전체 교과서를 다 종합적으로 정리한 수험서나 참고서가 공부하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많은 학생들이 온라인의 역사 강사들의 인터넷 강의에 의존해 공부하고 있다. 이는 인문학 공부를 텍스트의 정독과 의미의 깊은 이해가 아닌, 요약 정리내용의 암기와 문제풀이의 단순 반복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학습 태도가 양산됨을 의미한다.


즉 입시 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도, 새로운 역사교육 이론으로 아무리 교육과정과 교과서 검정 기준을 변화시켜도 학생들의 역사 공부하는 모습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과 달라진 학교 현실이라면 지금은 개인의 지성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공부의 호흡과 깊이가 오히려 갈수록 짧아지고 얕아지고 있을 뿐이다. 학사 일정에서나 입시 전형에 있어서나 공부보다 다양한 체험 활동과 학교 자율 활동의 비중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사고는 지난 30여 년간 중간층이 하향평준화된 상황이며 학력은 상위권과 하위권의 학습격차가 과거보다 더욱 커졌다.


이렇듯 역사에 대해 갈수록 학업의욕이 저하되는 학생들과 민족사회주의의 관점으로 도배가 된 교과서들로 독점화된 역사교육의 결과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하나는 집단주의적인 인간관과 사회관을 갖고 현재의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세계사적 이해를 결여한 채로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일제시대의 역사 서술은 그 시대가 초지일관 수탈의 시대였음을 강조하는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식민지 수탈론은 조선 사회 정체성론과 같은 일제의 식민사관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지만, 더 넓게 보자면 이 역시 사회주의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일본이 조선을 수탈했다는 기본 인식은 사회주의적 시각을 가진 학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인식일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이 도입하고자 했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시장은 이들이 볼 때는 경제적 수탈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사회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느냐 아니냐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사회주의와 같은 반개인주의 이데올로기가 기저에 깔고 있는 인간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편향된 이해에 있다. 가령 유럽 근대 정치사에서 반개인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사유재산제도 자체에 대해 인간을 탐욕과 불평등으로 이끄는 악의 근원으로 보았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혐오하는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를 수긍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님을 역사가 보여준다. 20세기 전반부에 자존심에 상처 받은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에 노동조직을 통해 파고들고자 했던 코민테른이나, 역시 1차대전으로 자존심에 상처받은 독일인들에게 반유대인 및 반금융자본 정서를 선동하며 집권 전부터 민족사회주의를 분명히 표방했던 독일 나치의 모습은 그 예이다. 1920년대 초반부터 nationalism과 사회주의를 결합시킨 히틀러의 독일노동자당 그리고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의 급진파였던 레닌의 볼셰비키, 이 두 권력 집단은 결국 나중에 2차 대전에서 서로 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이기는 했으나 본질적으로 그 반개인주의적인 전체주의적 성격이 너무나 서로 닮아 있었기에 경쟁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현재의 세계사 교과서 내용은 19세기부터 세계를 험악하고 피에 물든 시대로 만든 근본 원인을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외면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기술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더욱 가열차게 확산되었던 제국주의는 세계사 교과서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소위 ‘독점 자본주의’와 잉여자본 투자를 위한 열강의 대외 팽창,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인종적 우월감 등이 그 본질인 것이 아니다.


그 가장 핵심은 유럽 전역에 팽배했던 당대의 nationalism이라는 집단주의적 사회 흐름, 다시 말해 반개인주의와 반자유주의 사조였다. Nationalism과 같은 집단주의적 광기가 사회적으로 발산되지 않았다면 정부가 개입하는 독점 자본주의도, 국가 간 대외팽창 시도도, 노동자 대중에게 확산된 인종 차별도 나타나기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전체주의도 다수 민중, 즉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주의적 욕구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의해 제어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선동되어 분출된 결과였다.


하지만 현행 세계사 교과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사회적 정의, 역사적 정의를 향해 세계사가 진보해왔음을 되풀이하여 강조할 뿐이다. 정말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보다 사회 정의와 역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 신성할까? 경제적 빈부 격차는 정말 사회 불의인가? 마찬가지로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 가령 반일 활동은 정말 역사적 정의인가? 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러한 주제에 대해 사고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세계사적인 시각을 가지고 한국사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번 조선 말기의 사회 상황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조선 멸망의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자. 한국사 교과서 상으로는 조선 후기에 상품화폐 경제가 잘 발달해 나가고 있었는데 19세기에 와서 단지 무역이 좀 쇠퇴하고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백성들의 삶이 망가지게 되었다는 논조이다.


그런데 애당초 19세기의 세도정치는 왜 나타났을까? 그저 정치적 해이가 초래한 결과인가? 사실 정치적 해이라는 애매모호한 분석은 분석이라고 볼 수도 없다. 조선의 19세기 파행적 정치의 근본 원인은 한 마디로 정치가 시장을 압도하는,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장이 발달하지 못하고, (중앙과 지방의) 정부 권력이 비대화했기 때문에 권력의 폭주로 나타나는 부패를 막을 길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조선의 정치 시스템에서는 영국에서와 같은 정치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의회 정치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집권 세력에 대한 견제가 힘들었다. 권력의 폭주와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의회와 선거를 통해 정치 집단 간의 공정한 경쟁, 즉 정치시장이 존재해야 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작아지는 수밖에는 해결책이 없다.


19세기에 조선의 무역이 쇠퇴한 것 역시 그저 일본 상인, 중국 상인에게 경쟁에 밀려서라고 말하는 것은 분석이 아니다. 그건 그저 19세기에 나타난 현상에 대한 기술일 뿐이다. 왜 조선에서는 일본 상인들이 보여준 혁신이 일어나지 못했는가? 이 역시 시장의 발달이 미숙해서였다. 그리고 그 근본에는 유교 공동체의 집단주의적, 신분적 틀 속에서 사유재산 관념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조선 멸망의 본질은 바로 시장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시장이 크지 못했기에 조선 사회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알 기회도 없었다. 그저 시장은 정부에 수탈만 당할 뿐, 정치 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 관료, 즉 조선시대 정치 세력의 부패와 전횡은 견제할 방도가 없었다. 살고 싶으면, 출세하고 싶다면 그 부패와 전횡의 집단적 패거리 짓거리에 동참하거나 편승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현행 세계사 교과서 내용에는 매우 모호하게 은폐되어 있지만, 각종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였던 근대 유럽 정치사 속에서 가장 대표되는 정치적 흐름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였다. 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 귀족이나 자본가 개인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온건한 쪽이어서 입헌군주정, 제한선거 등과 관련된 반면, 민주주의는 민중의 요구를 내거는 과격한 색채를 띠고 공화정, 보통선거 등과 관련되었다.


근대 유럽 정치사에서 자유주의의 정치적 방향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준 나라는 영국이었다. 16세기 상업 혁명 이래로 포르투갈과 스페인과 같은 가톨릭 국가들과 달리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랐던 네덜란드와 영국 등은 동인도회사 등과 같은 자본 투자를 통해 급속도로 국부가 증진되었다. 로크와 애덤 스미스로 상징되는 고전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 정치 경제 사상은 이러한 영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했던 철학적 결과물이었다. 현행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전혀 서술하고 있지 않지만, 그 결과 영국은 당대 유럽의 어떤 국가보다도 개인의 법적 권리가 정교하게 발달한 반면 정부의 역할은 미약하였다.


반면 민주주의의 정치적 방향을 가장 전형적으로 표출했던 나라는 프랑스였는데, 17, 18세기 유럽의 절대 왕정을 주도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에 저항하는 정치사상이 계몽을 명분으로 격렬하게 생성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사회 구성원 공통의 의지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 루소의 생각, 특히 인민주권 사상에 영향 받아 공화정을 수립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 나타난 공포정치의 인민재판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혁명 반동 세력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현행 세계사 교과서 내용은 의회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정치 흐름이 시민 혁명으로 끝없이 점철된 프랑스와 얼마나 달랐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 그 결과 산업혁명이 왜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에서도 본질을 설명하지 못한다.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된 원인을 기술한 세계사 교과서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영국에서 모직물 공업이 발달했고 철과 석탄이 풍부했다는 등 지엽적인 사실들을 거론하거나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한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을 주요인으로 거론하는 철 지난 이론을 재탕하는가 하면 시민 혁명으로 인해 정치가 안정화되었기 때문이라는 혁명 위주의 진보 사관의 틀을 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일제시대 토지 조사 사업에 대한 한국사 교과서의 민족사회주의적 서술에서 보이는 토지 사유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영국사를 보면 영국은 유럽사에서 가장 부정적인 현상의 근원지였다. 잉글랜드에서 토지 사유화는 특히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인클로저가 법안을 통해 확정되어 나가는 추세가 보편화되면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러한 추세는 절정에 달했다. 심지어 18세기 초 잉글랜드와 합병했던, 원래 부족적인 공동체의 전통이 보다 강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하이랜드 클리어런스(Highland Clearances)라 불리는, 오히려 잉글랜드에서보다 훨씬 과격한 양상으로 토지 사유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사유 재산권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잘 보장되고, 시장과 무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발달했던 영국에서, 그리고 그 반대로 정부의 힘은 다른 어느 유럽 국가들보다도 작았던 영국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의 출현이라는 ‘시장의 혁신’이 가장 빠르게 발생했던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후 19세기를 거치며 영국의 자유주의는 선거권 확대와 같은 민주주의적 요소를 포용하게 되고, 반대로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시 나폴레옹 법전이 반영하듯 자유주의 정신을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와 자유 보장을 절대적 가치로 하는 자유주의와 비교할 때, 민주주의는 결국 정당 간에 의회의 의석수로 대표되는 다수결을 그 본질로 하며, 이를 통해 얻어지는 권력을 통해 사회적 정의 실현 등 아름다운 명분을 추구하는 것에 집중한다. 특히 20세기 전체주의 국가들의 사례는 자유주의에 의해 제어되지 않은 민주주의가 그 어떤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약속했건 결국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는 공포정치 혹은 전쟁을 초래할 뿐임을 프랑스 시민혁명에 이어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21세기 지금의 한국 사회 역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불안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좌파 지식인들이 여전히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불편해 하며 민주주의를 한사코 고집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소위 권위주의 군사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목이 터져라 외치던 한국 좌파 세력은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처럼 인민 민주주의의 방식대로 현재 한국의 대중 독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좌파 정부에 의해 통제와 잔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으며 말 그대로 코로 자유롭게 숨 쉴 자유도 사라진 현재의 코로나 상황 속에서 현 정부의 방역에 대한 이견이나 사회적 토론이 존재할 공간은 없다. 군인 정치 시절과 비교하자면 권위주의적 통제의 명분이 공산주의 북한에 대한 대응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으로 치환되었을 뿐 대중의 공포 혹은 증오 감정에 기댄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적 통제 사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즉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원리는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측면에서 2015년에 일어났던 국정 한국사 교과서 발행 시도의 역사적 의미를 말해 보자면, 이는 단순히 당시 집권 세력에 의한 반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의 출현이라기 보다는, 이미 그 전까지 한국사 교과서 내용 검정 기준 및 검정 교과서들이 지닌 한계가 비로소 드러난 사회적 현상에 가까왔다. 즉 기존 교과서의 검정 기준이 강제하고 있던 민족사회주의 역사관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 지성과 도덕의 시류를 거스르고 있음을 보여준 사회사적 현상이었다. 기본적으로 세계사적인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흐름에 대해 편향적인 부정적 시각으로 점철된, 그리고 시장의 의미에 대해 이를 축소 왜곡하는 방향으로 점철된, 현행 한국의 역사교과서 내용의 검정 기준에 내재한 철학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는 시간이 갈수록 역사교과서들이 자기모순에 빠져 결국 사회로부터 외면 받게 될 것이다.


과연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 체제로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이는 하자 말자 차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는 앞으로의 정치 변화에 따라, 즉 국회의 의석 수가 어떻게 나뉘느냐에 따라 시도될 수도 있고 못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최소한 교과서 검정의 기준과 철학이 자유주의가 거세된 민주주의, 즉 전체주의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그래서 이러한 방향으로 역사 교과서 내용을 지속적으로 강요하고 교과서 시장을 독점해 나간다면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한 시도는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될 것이라 예견하며, 또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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