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많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한국의 실내 마스크 강제 정책은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집단주의적 정서 (과잉 공포)가 가져온 최악의 사회적 결과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한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점까지 실내에서 국민이 마스크를 강제 착용하고 살아가는 사회다.
이 모습에 불편해 하지 않는 것은 마치 북한에서 김 씨 일가를 찬양하는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습에 불편해 하지 않는 것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는 이타적인 공동체 정신이나 지역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모습이라기보다, 본질은 우리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식론적인 개인주의적 각성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더 가깝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정말 객관적인 것일까? 나는 정말 잘해온 것일까?” 등의 자기 성찰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작년 초에 내가 겪은 일화가 생각난다. 일요일 아침 집을 나와 한적한 한강변을 조깅하던 중이었다. 실외에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던 작년이었지만, 나는 당연히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내게 접근해왔다. 공무원인 듯 보이는 그는 달리던 나를 멈춰 세우고 나에게 마스크를 쓰도록 지시했다. 나는 할 수 없이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어 썼고 그는 돌아갔다.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이후 계속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달리고 있던 나에게 좀 전 그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서 나에게 다시금 마스크를 쓰도록 지시했다. 그때 나는 설마 그 사람이 내가 계속 마스크를 쓰는지 안 쓰는지 감시하려고 조깅하던 나를 따라왔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좀 섬짓했다.
며칠 전에는 지하철에서 평소처럼 코를 내어 놓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예 안 쓰고 싶지만 괜시리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나름대로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나의 작은 노력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역시 내게 다가와 마스크를 ‘똑바로’ 쓰라고 얘기했다. 나는 알았다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볼 수 있도록 마스크로 코를 덮은 후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옆 칸으로 건너갔다. 물론 옆칸에서 나는 다시 마스크를 내리고 내 코로 공기를 자유롭게 다시 들이쉬고 내쉴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앞에 말한 그 공무원처럼 나를 따라 옆칸까지 오지는 않았다.
나는 코로나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았고, 마스크도 지난 3년간 ‘감시의 눈’이 심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적어도 내가 자발적으로는 쓰지 않고 살아왔다. 이쯤되면 한국 사회에서는 몰지각하고 주위 사람에 대한 배려 없는 악당으로 인식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마스크 방역 정책에 표시나게 소신껏 저항한 적은 없다. 저항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고, 그렇게 나의 소신을 내세우는 행동을 일상에서 나 혼자 개인적으로 해봐야 나만 피곤하기 때문이다(내가 이렇게 피곤하게 느끼는 상황의 본질이 바로 이 칼럼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의 일화 속 공무원과 마스크를 똑바로 쓰도록 잔소리하던 시민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말로 자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들이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 마스크 착용을 감시하고 지적하도록 세뇌시킨 마스크 착용 관련 방역 정책은 정말로 근거가 충분한가. 아니, 근거가 전 국민이 3년 가까이 일상에서 마스크를 똑바로 써야 하는 (그래서 코로 숨도 자유롭게 못 쉬도록 지시 받고 살아야 하는) 비용(cost)을 상쇄할 정도의 생명 위험 방지 효과를 가지는가? 사실 이 질문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마지막 질문이다.
우리는 아무 위험이 없는 세계에서 살 수는 없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아무리 남발해도 일상을 무균화할 수도 없고 면역학적으로도 위험한 시도일 뿐이다. 당연한 사실을 잊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절멸을 추구하며 질주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죽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 바이러스 풀 안에서 경쟁과 도태를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 나갈 뿐이다. 그리고 호흡기 바이러스들의 진화에 진정으로 발맞추어 함께 적응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실험실에서 만들어 내는 백신이 아닌 인간의 자연 감염과 자연 면역 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객관적으로 보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은 쏙 들어가버렸지만 한동안 소위 ‘무증상 감염’이라는 말이 코로나19 증상의 하나로 대중 매체에 흔하게 사용됐다. 이는 원래 감기 바이러스들이 인간의 환경 속에서, 그리고 인간의 몸속에서 보여주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다. 호흡기 바이러스들은 대개 공기 중 거의 어디나 있어서 언제든 몸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이들 바이러스를 내 몸의 면역 체계가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몸 안에서 과다 증식을 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존의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의 본질과 크게 다른가? 도대체 어딜 봐서 다르다는 것인지 나는 어떤 감염 내과 전문의나 방역 정책 담당자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학계가 현 방역의 접근 방법에 대해 이견이 없다는 주장은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주류 의견에 반대하는 과학자와 의학자는 소수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그들이 대중을 위해 쓴 서적도 다수 출간됐다.
사실 본질은 마스크가 과연 가성비 있는 방역 대책이냐 따위의 논쟁이 아니라, 애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말 보통의 일반인에게 생명의 위협이 되는가이다. 결국 코로나 사태가 3년이 되어 가는 지금은 대중이 갖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불합리한 과대 공포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마스크를 실내에서 ‘똑바로’ 쓰지 않는다고 서로 감시하고 지적질하는 모습을 K방역의 한 단면으로 자랑스러워할 때는 아니다.
스카이데일리 [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칼럼 기고 글
기사 입력 2022-09-22 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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