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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eminteacher

낭만주의와 위생 (Romanticism and Hygiene)




-동양의 인간관은 자연의 일부로 보는 전체론. 서양은 하위요소들의 상호작용인 환원론

-19세기 서양의학에서도 자연치유 개념 등장. 환원론적 경향 강화되면서 비주류로 전락

-공기와 물 중심이던 위생 개념, 정부 개입 이후 세균·청결 위주 공중위생 개념으로 변질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영국에 유학 가기 전엔 차를 몰았었다. Mustang이라는, 고등학교 때 내가 만든 만화책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차였다. 나름의 로망을 실현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허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완벽한 뚜벅이족으로 변신했다.


나는 비누도 샴푸도 치약도 쓰지 않는다. 로숀도 자외선 크림도 아무것도 몸에 바르지 않는다. 딱히 화학제품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산 지 한 7년 정도가 넘어가다 보니, 이 편한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특히 여행할 때는 너무 편하다.


하지만 여기서 내 라이프 스타일 철학을 얘기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고, 역사적으로 철학과 문학, 의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흔히 동양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서 전체론적으로 이해하고 서양에서는 자연이나 인간의 몸을 세분화된 하위요소들의 기능과 상호작용으로서 환원론적으로 이해해왔다는 생각이 역사적, 철학적으로 보편적이다. 정말 그럴까?


공교롭게 내가 박사과정 당시 연구했던 내용도 자연과 인간의 몸 간의 관계에 대한 주제와 관련되었다. 가령 19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위생(hygiene)이라는 관념은 그러한 주제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는데, 위생의 개념 자체는 19세기 내내 의학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볼 때 극히 복잡하고 현란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자연치유 철학(nature cure philosophy) 혹은 자연치유력(healing power of nature)에 대한 19세기 관념이 위생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유럽에서 낭만주의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의철학의 요소 중 하나가 자연치유(nature cures)라는 관념일 것이다. 이는 당시 사회적으로 대중적인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적지 않은 의사들 역시 이러한 관념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아직 의사 집단이 충분히 전문직화하지 않은 19세기 중반의 의료 시장에서 각종 의학이론들이 각축을 벌이던 가운데, 그러한 자연주의적 경향성을 강하게 내보인 치료 중의 하나가 hydropathy였다.


19세기 유럽의 hydropathy는 기존의 주류 의학이 약에 과하게 의존하던 것과 비교하여 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물론 물, 즉 다양한 형태의 목욕(bathing techniques)을 주된 치료 수단으로 하였지만, 이들 의사 중에는 목욕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위생요소(hygienic agents), 예컨대 산책 – ‘exercise in the fresh air’ -를 치료에 있어 중요시하였다.


19세기 유럽에서 낭만주의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의철학의 요소 중 하나가 자연치유(nature cures)라는 관념이다.


나의 박사과정 논문의 주인공이자 한때 다윈(Charles Darwin)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Edward W. Lane(1823-1889)의 경우가 그랬다. Hydropathy를 시행했던 그가 위생의학(hygienic medicine)이라는 이름을 걸고 새로운 의학이론을 제시했을 때 그 내용은 사실 획기적이거나 새로운 내용을 담았다기보다는 전통적인 위생요소들, 특히 목욕과 산책 등을 강조하고, 거기에 철학적인 기반으로 자연치유 철학을 활용하였다.


그런데, 내가 Lane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19세기 후반의 영국 의사들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재미있었던 사실 중 하나는, 그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자연주의적 의학 관념을 medical reform의 주된 이슈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moral reform, institutional reform 등 온갖 사회적 ‘reform’이 주 화두였던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그들은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가질 만하였다.


당시 영국과 미국의 의학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그런 보다 자연주의적 관념을 가진 의사들(미국의 의학사가인 J. H. Warner의 표현을 빌자면 ‘nature-trusting doctors’)은 자신들의 이론이 훨씬 진보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것이라 생각했고 경쟁관계에 있던 권위적 주류의학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19세기 말로 갈수록 환원론적 경향(몸의 장기들과 각각의 질병들을 분절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강화되는 의학시장에서 점점 더 비주류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러한 의학의 역사가 보여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자연과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인간의 몸을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으로부터 격리하는 방식으로 관리(control)해 나가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 되어갔다는 점이다.


19세기 영국사회는 분명 자유로운 생각들이 활화산처럼 분출되던 공간이었다. 새로이 성장한 중산층(middle classes)은 다양하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보다 ‘도덕적이며 지성적인’ 인간 사회를 향한 자신들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공유하였다. Mill이나 Bentham, Spencer 같은 엄청난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사상가들뿐 아니라 다양한 이름의 단체들(societies)과 이름 모를 수많은 지식인들이 reading public이라 불리우던 당시 중산층 대중의 요구에 맞춰 강연회를 열고 책을 출판했다.


그러한 대중의 관심 속에 의술을 다루는 집단은 19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전문직화(professionalization)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국가의 도움이 핵심적이었다. 가령 1858년의 Medical Act로 대표되는 의료법의 시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전에도 길드(guild)적인 성격을 띤 Royal College of Physicians과 같은 전문직 단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세기말 국가적 면허 체계를 통한 전문직 의사 집단의 성장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는 이전의 자연치유와 같은 낭만적인 인간과 자연관으로부터 의학이 작별을 고하고, 환원론적 의학 관점(reductionist medical view)이 의료시장을 독점하게 되는 현상과 병행하여 나타났다.


오스트리안 경제학파가 주장하듯, 시장의 독점은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 그 뒤에는 늘 정부가 있다. 19세기 의학의 역사에서도 초기의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은 의사집단에 의해 위생은 영국 사회에서 공기와 물을 중심으로 이해되었던 데 반해, 후기로 가면서 위생은 세균과 청결 위주로 관념이 변해갔으며 국가적 성격을 가진 공중 위생이 사회적으로도 위생 관념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낭만주의적 위생의 관념, 즉 인간의 몸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각이 국가를 등에 업은 새로운 전문직 의사 집단의 성장 과정에서 비주류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몸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몸이 지금까지 얼마만큼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이다. 환원론과 전체론적 시각의 사이에서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자신의 지식으로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자세 자체가 지적 오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제3의길 기고: 제3의길 83호 [2020년 1월 28일] 게재 기사

해당 기사 링크: http://road3.kr/?p=27999&cat=150

원 제목: '낭만주의와 위생 (Romanticism and Hygiene)'

수정된 제목: '낭만주의와 위생 개념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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