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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Baeminteacher

고등학교 세계사 교육의 문제점



A book of the history of Western medicine, Kyushu University Medical History Museum, Fukuoka (February 2019)



발표자: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발표일: 2023년 1월 16일


현재 고등학교 세계사 교육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그 중요도가 감소해왔다. 사실상 이러한 세계사 교육의 축소 현상 자체가 현 고교 역사 교육 전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세분화되어 온 여타 다른 사회과 교과목들과 비교해 볼 때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세계사’라는 너무도 방대해 보이는 단일 과목을 수능 시험을 위해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 결과 고교생들의 역사 인식은 (한국사 교육 내용에 담긴 왜곡된 시각은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사 중심의 폐쇄적인 자국사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현행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는 몇가지 그 근본 시각 내지는 철학적 토대에 있어 심각한 편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근현대사 부분에서 이러한 문제는 두드러진다.


첫째, 현재의 세계사 교과서 내용은 19세기부터 세계를 험악하고 피에 물든 시대로 만든 근본 원인을 제국주의로 묘사하고 있으며 철저히 서구 열강의 아시아, 아프리카 침략이라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그와 관련된 교과서 상의 설명에 문제가 많다. 19세기 후반부터 더욱 가열차게 확산되었던 제국주의는 세계사 교과서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소위 ‘독점 자본주의’와 잉여자본 투자를 위한 열강의 대외 팽창,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인종적 우월감 등이 그 본질이라고 보는 관점은 맑시즘적 시각에 편향되어 있다.


이러한 맑시즘과 반대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시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 교과서 내용과 다른 내용의 근현대사를 기술할 수 있다. 즉 19세기 후반부터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진 유럽 열강 간의 호전적인 대립구조의 가장 핵심은 유럽 전역에 팽배했던 당대의 nationalism이라는 집단주의적 사회 흐름, 다시 말해 반개인주의와 반자유주의 사조였다. 그와 같은 각국 정부가 주도하는 집단주의적 광풍이 전유럽에 사회적으로 확산되지 않았다면 정부가 시장을 왜곡하는 독점 자본주의도, 국가 간 군비 경쟁과 대외팽창 시도도, 노동자 대중에게 확산된 인종 차별도 나타나기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1차 대전 이후 거세게 나타난 전체주의도 정부의 잘못된 시장 개입이 초래한 경제 공황의 발생과 다수 민중, 즉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주의적 욕구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의해 제어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선동되어 분출된 결과였다.


하지만 현행 세계사 교과서는 최소한 역사 기술의 논쟁성을 바탕으로 좌우 대칭적인 역사적 시각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모습이 전혀 없다. 맑시즘에 근거한 세계사적 시각으로 사회적 정의, 역사적 정의를 향해 세계사가 진보해왔음을 되풀이하여 강조할 뿐이다. 정말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보다 사회 정의와 역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 신성할까? 경제적 빈부 격차는 정말 사회 불의인가?


두번째로 현재 세계사 교과서 내용에는 민주주의의 역사성이 왜곡되어 민주주의가 이상화되어 있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 검정 기준과 관련하여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여야 함을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들이 민주주의의 역사성에 무지하거나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세계사 교과서 내용에는 매우 모호하게 은폐되어 있지만, 서구 근대사에서 민주주의는 급진적 사상이었지, 20세기에 서구 정치학자들에 의해 그 의미가 확대 강화된 지금과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근대 유럽 정치사 속에서 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 귀족이나 자본가 개인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온건한 쪽이어서 입헌군주정, 제한선거 등과 관련된 반면, 민주주의는 민중의 요구를 내거는 과격한 색채를 띠고 공화정, 보통선거 등과 관련되었다.


근대 유럽 정치사에서 자유주의의 정치적 방향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준 나라는 영국이었다. 16세기 상업 혁명 이래로 포르투갈과 스페인과 같은 가톨릭 국가들과 달리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랐던 네덜란드와 영국 등은 동인도회사 등과 같은 자본 투자를 통해 급속도로 국부가 증진되었다. 로크와 애덤 스미스로 상징되는 고전 자유주의 정치 경제 사상은 이러한 영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했던 철학적 결과물이었다. 현행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전혀 서술하고 있지 않지만, 그 결과 영국은 당대 유럽의 어떤 국가보다도 개인의 법적 권리가 정교하게 발달한 반면 정부의 역할은 미약하였다.


반면 민주주의의 정치적 방향을 가장 전형적으로 표출했던 나라는 프랑스였는데, 17, 18세기 유럽의 절대 왕정을 주도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에 저항하는 정치사상이 계몽을 명분으로 격렬하게 생성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사회 구성원 공통의 의지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 루소의 생각, 특히 인민주권 사상에 영향 받아 공화정을 수립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 나타난 공포정치의 인민재판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혁명 반동 세력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현행 서양사 부분 교과서 내용은 18세기 후반 이후 시민 혁명으로 끝없이 점철된 프랑스 정치사에 인류 역사의 진보라는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는 맑시즘의 근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산업혁명이 왜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애써 본질을 외면하다.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된 원인을 기술한 세계사 교과서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영국에서 모직물 공업이 발달했고 철과 석탄이 풍부했다는 등 지엽적인 사실들을 거론하거나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한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을 주요인으로 거론하는 철 지난 이론을 재탕하는가 하면 시민 혁명으로 인해 정치가 안정화되었기 때문이라는 혁명 위주의 진보 사관의 틀을 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시장 경제 중심의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설명하자면, 인클로저가 법안을 통해 확정되어 나가면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토지 사유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영국은 사유 재산권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잘 보장되고, 시장과 무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발달한 반면 정부의 힘은 다른 어느 유럽 국가들보다도 작았다. 이러한 영국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의 출현이라는 ‘시장의 혁신’이 가장 빠르게 발생했던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후 19세기를 거치며 영국의 자유주의는 선거권 확대와 같은 민주주의적 요소를 포용하게 됨으로써 가장 안정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성립하게 된다.


셋째, 마지막으로 인류 역사 발전에 있어서 핵심 중의 하나인 개인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이 전혀 세계사 내용에 녹아 있지 못하다. 이 역시 집단 (사회)를 내세우는 사회주의적 관점이 교과서 내용의 기본 토대를 구성하다보니 나타난 자연스런 결과이다. 개인주의(individualism)라는 용어 자체는 19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구 지배질서를 지지하는 반혁명주의자, 가톨릭 보수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 등이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들먹이는 소수의 지식인들을 폄하하고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었지만, 용어의 생성 여부를 떠나 사적 자치를 행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관념은 서양 근대사에서 발전해 나간, 세계 지성사의 핵심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사적 소유 제도가 개인주의의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으며,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 사적 재산을 축적한 개인에 의해 자유 시장 경제가 –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더불어 –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는 점은 맑시즘을 기조로 하는 현재 세계사 교과서 내용에서 당연히 빠져 있다. 반대로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은 이러한 현상과 체제가 인간의 탐욕을 부추긴다고 주장하는 현대적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관점에서 (역사학적 접근이라기 보다)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개인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종교개혁이었다고 보는, 교회사를 통해서 정치철학사의 발전을 바라보는 (서양사에서는 당연한) 시각도 빠져 있다. 프로테스탄트라 불리우는 개신교도야 말로 근대적 자유주의 시민의 본질이며 이들은 서양 근대사의 정치 경제적 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기독교적 시각은 아마도 교과서 집필진들의 맑시즘적 시각에 자본주의 만큼이나 위배되기에 당연히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상의 세 가지 세계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한 문제들은 한 마디로 다시 요약될 수 있다. 즉,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현대 사회 문명의 가장 핵심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세계사적으로 결합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설명을 현재의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는 결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든 집필진들이 맑시즘적인, 사회주의적인 시각에 경도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 혹은 인정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역사적인 좌우 균형 감각을 추구해 나가기 위한 진지한 역사 서술은 한국사든 세계사든 교과서 집필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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